우리 집 초코와 겨울이를 생각하며.
많은 영화들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입장이나 관점 차이를 극명하게, 혹은 교묘하게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이끈다. 이에 잘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재미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타인에 대한 이해라든지 삶의 교훈 같은 것들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시선의 종류에는 큰 제약이 없다. 내레이션이나 독백으로 사람 아닌 주인공의 목소리도 얼마든지 낼 수 있고, 이에 맞춘 화면도 연출할 수 있는 덕분이다.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던 영화 두 편이 떠오른다. 바로 <마이키 이야기>와 <토이 스토리> 다. 전자의 경우 갓난아기(심지어 정자, 난자 상태에서부터!)가 어른들을 바라보며 속마음을 토로하던 모습이 무척이나 참신했다. 말 못 하는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어른들의 세상이 기발하고 유쾌했기에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도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이를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베일리 어게인>은 강아지(에서 개로 성장하는) '베일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려낸 영화다. 원작 소설 <A dog's purpose>와 같은 제목으로 작년에 미국에서 개봉했으며, 국내에서는 오는 22일 개봉할 예정이다.
사실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베일리 어게인>을 보기 전에 영화 <베토벤> 시리즈나 드라마(영화로도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명견 래시>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에 인상 깊게 보았던 그 작품들의 주인공은 분명히 개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훈련된 동물들의 연기가 아무리 뛰어났다고 한들 대사 없는 녀석들의 표현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요컨대 관객들은 베토벤과 래시의 속마음까지는 파악할 길이 없었기에 극의 중심은 여전히 사람들의 에피소드였던 것이다.
'견생 4회 차'라는 대대적인 홍보 문구가 알려주듯 영화에서 베일리는 4차례나 환생을 거듭하며 서로 다른 개의 삶을 살아간다. 전생과 후생이 직접적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 아니지만, 베일리는 몸만 '리셋'되고 전생의 기억은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나 새 주인과 관계를 맺는다.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한 건 관객들이 베일리의 속마음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녀석의 목소리는 <겨울 왕국>의 인기 캐릭터인 올라프의 더빙으로 유명한 조시 게드가 맡았다. 이렇게 친숙한 목소리로 베일리의 온갖 생각을 들을 수 있기에 관객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 진짜로 그러할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베일리의 마음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드러난다. 집안을 잔뜩 어지럽힌 자신을 향해 흥분하는 사람을 보고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순진한 개의 모습에 어찌 웃음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역시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따라 부르는 교감이 어찌 뭉클하지 않겠는가.
어린 이든(브라이스 게이사르 역)을 만나 사랑받고, 십 대 이든(K.J. 아파 역)의 청소년기를 함께하고, 노년의 이든(데니스 퀘이드 역)과 재회하기까지 베일리의 '견생'은 웬만한 인생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그렇다면 베일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함께 놀아주고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그 이상의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반려견들. 온갖 '의도'와 '목적'으로 얽힌 인간 세상에서 개들의 주인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맹목적이기에 더욱 두드러지는 순수한 '목적'의 형태가 아닐는지.
영화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강아지 두 마리의 배변판을 청소하며 영화 밖의 현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분명해진 게 있다. 두 녀석의 '목적'이 결코 나를 귀찮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당연한 게 아니냐고? 그 당연한 이해와 공감을 개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베일리 어게인>은 견주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영화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