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립 민속박물관-북촌 한옥마을 삼청동 일대 출사 코스
살짝 마음을 비웠을 때쯤 눈에 띄는 모습이 있었다. 남매로 보이는 아이 둘이서 알록달록한 말 놀이기구를 흔들며 즐거워하는 거였다. 내 또래에게나 추억의 물건이지, 녀석들에게는 새롭기만 한 장난감일 게 분명했다. 출사를 통해 한 가지를 다시 확인했다. 추억도 좋고 풍경도 좋지만 나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건 지금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느라 민속박물관을 벗어날 때는 살짝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으나 기대하지 않던 풍경에 적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이미 기우는 중이었다. 일행을 따라 서둘러 북촌 한옥마을 방면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광화문과 민속박물관은 날이 풀리면 여유롭게 다시 찾으리라 생각하면서.
삼청파출소를 지나서 쭈욱 걸었다. 1차선 도로 양 옆으로 즐비한 상점들과 북적이는 인파가 여전했다. 사진을 찍느라 몇 번을 멈추었다가 다시 또 작가님을 따라 걷는 내 일행의 행렬이 어쩐지 정겨웠다. 스무 명 정도가 비슷한 방향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니 마주 오던 사람들이 때때로 렌즈의 방향을 쳐다보곤 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게 재밌어서 행렬에서 이탈해 맞은편으로 건너가 봤다. 길이 좁은 지라 모두가 일렬로 나란히 걷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다시 넓어진 길로는 나란히 걷던 남녀 너머의 벽화가 쨍했다. 대학 무렵 삼청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두어 달을 오가면서도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알바는 역시 사람을 팍팍하게 만든다- 라고 하면 이상한 결론이겠지만 단상은 단상일 뿐.
삼청로 7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초소(?)가 있는 삼거리도 더 지나서 걸었다. 바리케이드가 보여서 잠시 멈칫했으나 생각해 보니 포털 로드뷰에도 나오는 도로인지라 안심했다. 그 옛날엔 이곳도 촬영이 제한됐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청와대 인근 길들도 개방되고 한걸 알아서 그런지 예전 같은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새마을금고와 삼청동 수제비 맞은편으로 좁은 골목이 나온다. '커피로드102'와 '카페테라스' 사이로 삐져나온 계단을 따라 오르면 본격적으로 북촌에 진입할 수 있다.
북촌 한옥마을은, 북촌 한옥마을이었다. 하필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카메라 배터리가 똑 떨어진 덕분에 좀 더 여유롭게 구경하며 산책했다...라고 하기엔 바보 같았다. 분명히 완충한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출사에 나선 티를 내버린 셈이다. 추가 배터리 따위는 물론이요 어디 들어가서 충전할 여유도 없었다. 짐짓 폰카로는 충분한 양 나머지 촬영은 아이폰과 함께했다. 작가님의 열강을 경청하고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어차피 파할 시간이 다 돼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실 한옥마을에서 사진 촬영을 제대로 해 보려면 몇십 분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북적이는 관광객들을 피해, 이로 인한 피해가 널리 알려진 주민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한옥마을을 즐기려면 휴일 오후는 맞지 않는 시간대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전편(https://brunch.co.kr/@hyuksnote/151)의 서두에서부터 언급했다시피 그날 나와 일행의 출사 코스는 사진 초심자에게든 그 이상에게든 짧고 굵게 즐기기에 딱 좋다고 여겨진 건 분명하다. 도심 인근에서 궁과 공원과 한옥의 풍경 모두를 걸으며 둘러볼 수 있는 조건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서 안국역이 독립운동 테마역사로 새 단장한 지도 꽤 됐다는 소식이다. 겸사겸사 열정이 식기 전에 더욱 단출하게 지하철을 타고 출사를 나가볼 예정이다. 그때는 안국역부터 시작해서 광화문까지 코스를 거꾸로 가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