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으로의 출사
박물관에 가는 목적은 반드시 전시 구경이 아니어도 좋다. 하나의 여행지이자 추억의 장소로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구경하는 이들을 구경하고, 관람 순서에 얽매이지 않은 채 마음껏 돌아다니다 보면 진열장의 유물만이 박물관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탁 트인 풍경 덕분에 야외 출사 장소로 좋을 뿐만 아니라 실내 촬영마저 자유로운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휴일 오후의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하는 지하보도를 따라 무빙워크에 올라타면 마치 공항에 온 듯한 기분에 여행감은 일찍이 고조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아이들로 가득해 소풍지의 느낌도 제법 난다. 많은 꼬맹이들이 엄마, 아빠 혹은 인솔 선생님을 따라 박물관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걷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옛 추억을 떠올릴 법도 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가는 곳 어디든 즐거운 여행지였던 어린 시절 말이다. 전시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이 시대의 기억을 담아낸 장소라면, 여행지로서의 박물관은 초입부터 이렇게 저마다의 추억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장소다.
아이들이 많은 장소는 으레 시끄럽기 마련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은 웬만한 소란스러움을 포용하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라서 괜찮다. 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박물관을 둘러보는 건 지루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다고 여겨질 정도다.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유물들의 근엄한 자태마저도 아이들의 눈빛을 받으면 살아있는 동물의 교태처럼 활기를 띤다. 유리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박물관에서나 동물원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이가 들며 알아가는 것들 -이를테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라든지 동부 이촌동의 땅값과 같은- 로 머리가 어수선하기 전 녀석들에게 이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의 구경거리들은 순수한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들은 3층에 걸쳐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건물이 넓고 볼거리는 많기 때문에 1층에 머무르다 보면 2,3층에 올라갈 틈도 없이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모른다. 관람 종료 시각이 월,화,목,금요일 오후 6시, 일요일과 공휴일은 7시, 수,토요일은 9시로 다른 점은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유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하루로는 부족하지만, 적당히 둘러보며 즐기는 정도의 여행이라면 두어 시간으로도 크게 모자람은 없다. 이야말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몇 번이고 찾아도 좋은 여행지로 볼 만한 이유가 아닐까. 아이들은 자라면서 많은 여행을 겪을 테고, 어느 틈엔가 박물관은 지루한 공간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성인이 되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다면 여행의 기분을 언젠가 다시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