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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r 12. 2019

황사와, 축구와, 미세먼지의 나날들.

하늘 색이 더 이상 하늘색이 아니라서 새삼스러운 단상



학교 끝나면 일찍 들어와라~ 황사가 심하댄다.


대답을 피하고 집을 나선 덕에 양심에 조금은 덜 찔린 채 그날도 난 어김없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축구를 했다.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친구들은 산성비 맞으면 대머리 된다며, 너나 대머리 하라고 서로 킬킬대면서도 기어이 공을 차고 놀았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놀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면 옷이 새카맣다며 엄마에게 혼나는 날들이었다. 그 정도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절이라서 좋았다.

 



요즘 녀석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미세먼지가 날로 심해지는 시대에 아이들은 밖에서 제대로 뛰어놀고 있는 걸까? 환경이 많이 변했고 그만큼 놀이문화도 바뀌었으니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황사가 미세먼지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인식됐기에 나는 어려서 축구를 했고, 미세먼지는 황사보다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요즘 애들은 PC방에나 간다- 이런 주장이야말로 아주 단선적이고 성급한 일반화라는 생각부터 든다 뭐 그런 말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의 비교는커녕 현재는 현재의 범주에서만 진단할 수밖에 없단 변명을 하기 위해 그 옛날 황사 얘기까지 꺼냈나 보다. 연일 미세먼지가 '최악' 이거나 '상당히 나쁨'인 휴대폰 화면을 봐야 하는 요즘을 살아가며 나는 그래서 '과거에도 실은 미세먼지가 심했다'라든지 '무슨 소리냐, 요즘같이 심각할 때는 없었다'라는 양쪽 어디에도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뿌예지는 하늘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재난경보가 와서 더 심하게 느껴지나'라고 넘기기에는 잠시만 나갔다 와도 눈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은 칼칼-하니 이게 무슨 환경인가 싶다. 해서 '어떻게 살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옛날 황사 바람에 신나게 축구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또 헷갈린다. 이제는 영양제를 두세 개나 챙겨 먹는 어른이 된 터라 걱정이 많아졌나 싶은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결국에는 마스크 조절 끈이나 더욱 팽팽히 당겨볼 뿐이지만.  


미세먼지가 사람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해로워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틀림없이 옳단 생각만 강하게 든다. 실제로 최근 들어 그다지 유쾌한 기분으로 지내본 적이 없는 듯해서다. 여기에 또 개인사나 컨디션을 갖다 붙여서 먼지 탓만은 아니네 어쩌네 하는 일만큼 피곤한 게 더 있을까? 확실히 미세먼지는 기분을 다운시키고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는 게 맞다.(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미세 먼지가 걷히고 나면 내 기분도 좋아질 거란 확실한 희망 공식이 성립할 테니까)




대기 상태가 모처럼 나아졌다는 며칠 전 잠시 올려다본 하늘은 확실히 하늘색이었다. 하늘 색이 하늘색인 게 그토록 새삼스럽단 사실이 잠시 서글프기도 했고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 갈 때는 그래서 늘 챙기던 마스크도 없이 슬리퍼만 찍 끌고 갔더니 그게 또 단출하고 편하여 소소하게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잠깐이었다. 이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수치가 100을 넘어가는 날들로 돌아오고 보니 방심은 금물이라는 경계심만 강해졌다. 오늘 아침의 하늘이 유독 잿빛으로 보인 게 먹구름의 영향인지 기분 탓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마스크는 내내 필수였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먹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걸 끼고 옆사람과 우물우물 이야기를 나누느라 다시 불편함을 느꼈다.


엄마, 지난번에 사놓은 마스크 어디 있어요?


여전히 부모님과 살고 있는 난 이제 아침마다 알아서 마스크를 챙긴다. 귀가 시간은 어릴 때보다 늦어졌으나 축구를 하느라 그러는 건 결코 아니다. 공을 차고 놀던 시절의 여유는 물론 친구들도 모두 뿌옇고 뿌연 미세먼지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내일도 올려다볼 잿빛 하늘에 축구공 모양의 구름 한 점이라도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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