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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20. 2018

2층 카페에서 내려다본 사람들

방금 전까지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전망이 뛰어난 카페를 선호한다. 

내부가 좁다거나 주위가 온통 회색 건물들 뿐인 매장에는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반면, 탁 트인 풍경을 지닌 카페는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런 곳이라면 비록 커피의 맛이 평범할지라도 머문 시간 동안의 여유로움만으로도 좋은 카페로 기억에 남는다.


며칠 전에도 어김없이 2층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가 이어져 있어 바깥이 훤히 보이는 덕분에 가끔 들르는 익숙한 장소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평소같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무심코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잘 보여서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한참을 구경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발맞추어 번화가를 지나가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쳐다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모습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웃으며 얘기하는 사람, 무표정한 사람, 표정이 잘 읽히지 않는 사람... 카페 창가에서 바라보던 낯선 타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새삼스러웠다.


문득, 내가 남들을 보고 있는 현재로부터 언젠가 남들이 나를 보았을 과거를 떠올렸다.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친구와 낄낄대며 걸었을 때 누군가는 창가에서 나를 내려다봤겠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을 때도, 여자 친구와 말다툼을 하다가 창피해서 두리번거릴 때조차 누군가는 나를 봤겠지?


판옵티콘이라든지 빅브라더 같은 어떤 감시의 개념 따위로 확대할 생각은 없다. 더 친숙한 예를 들자면 영화 트루먼 쇼처럼 일상을 감시당하는 기분에 대해 논하고자 함도 아니다. 단지 그날따라 그런 기분에 휩싸였던 게 유난스러웠달까. 내 시선 같은 건 전혀 의식하지 않던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던 나는 어느새 타인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언젠가 나로 향했을 타인의 시선을 상상하며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혼자 길을 가다가 발을 헛디디는 등의 실수를 했을 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괜히 중얼거리거나 자연스러운 척하려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처럼 평범한 일상에서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매우 뜬금없게도 2층 카페에서 떠올린 나였다. 생각해 보니 특히 어린 시절에는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신앙이 없던 나로서는 신이나 절대자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결코 아니었다. 단지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금 나의 행동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더라도 괜찮은 모습인가?'

라는 일종의 자기 검열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남을 의식하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여러모로 부끄러움이 적어진 무뎌짐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주요한 이유는 바로 사회적인 학습 경험이 아닌가 싶다. 주위에서는 다들 남을 신경 쓰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집중하라고 가르치니까. 살다 보면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이 나를 신경 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나 역시 남들의 눈을 덜 의식하게 된 게 당연한 성장의 결과라고 믿었는데, 가만 돌아보니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카페 2층에서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덜 의식하게 된 것과, 남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를 쳐다보는 건 별개의 일이지 않나 하는 그런 의문 말이다. 요는, 내가 타인을 의식하느냐 안 하느냐와 상관없이 나는 너무나도 쉽게 또 다른 타인으로부터 관찰당할 수 있다는 거다. 반드시 카페의 통유리 너머가 아니더라도 개인이 노출되는 장소는 다양하지 않은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부터 주택가, 번화가 할 것 없는 일상의 공간들까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종종 쉽게 잊는 것 같다. 

적어도 자신이 남을 쳐다본 만큼은 누군가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창 밖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바로 아래가 아닌 건너편 저 너머의 건물 위를 올려다봤다. 식당이며 카페, 노래방 등의 테라스와 창가들로 어수선했다. 그 안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리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안이 자세히 들여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씩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얼핏얼핏 보였다.


가만있자, 조금 전에 아래를 쳐다보면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었나... 손으로는 코를 만지작 거렸던가? 귀를 후볐나? (아무리 그래도 공공장소에서 코를 후비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창 너머로 남들을 바라보느라 조금 전 내 모습은 어느새 잊고 있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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