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의 지하철 풍경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다. 밀지 않으면 탈 수 없는 터질듯한 차량 한 칸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이 들어찬다. 아니, 실은 더 탈 수도 있지만 문은 닫혀야 한다. 가만 보면 지하철 양문 근처의 빽빽함과 달리 통로 안쪽으로는 넉넉해 보일 정도의 공간이 있다. 곧 내릴 사람, 환승할 사람들이 문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은 터질 듯 터지지 않고 달린다.
하루는 그 안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두 남녀가 서로 밀착한 채 눈을 부라리고 다투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한 남자 : 니가 밀고 들어오니까 그렇잖아!
한 여자 : 야, 뒤에서 미는데 그럼 어떡하라고?
그 남자 : 야?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그 여자 : 당신이 먼저 말 깠잖아! @#%#$
에어팟 한 짝을 슬쩍 귀에서 빼고 언쟁에 귀를 기울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듯 보였고, 양쪽 모두의 잘못으로도 보였다. 아무튼 둘 다 보통은 아니었다.
문득 나를 돌아봤다. 그날은 그럭저럭 컨디션이 좋아 낑기고 밀리는 것쯤 웬만하면 괜찮았다. 그런데 괜찮지 않던 어느 순간들이 떠올랐다. 발을 밟히고도 사과받지 못했을 때, 신경질적으로 밀치며 중얼거리는 이를 만났을 때였다. 대놓고 다툰 적은 없었으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던 기억이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요새 신경쓸 일도 많은데, 돈 만 원이 아쉽던 한때의 만원 지하철에서 내게도 타인을 포용할 여유는 부족한 적이 많았다.
이윽고 환승역이자 종착역에 도착한 열차가 속을 모두 비워낼 시간이었다. 슬금슬금 문가로 전진하며 나와 같은 이들을 새삼스레 좌우로 훑어봤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서둘러봐야 뻔한데 팔꿈치로 미느라 바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앞사람이 앞사람을 밀고 뒷사람이 뒷사람에게 밀리는 풍경이 또 펼쳐졌다.
밀지 않아도 내릴 서로가 서로를 떠밀고 있는 풍경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뒷사람에게 밀려서 그런 건데 어쩔 거냐'며 화를 내던 그 여자는 떠밀려서 떠민 게 확실했을까? '왜 그렇게 밀어대냐'며 신경질을 낸 상대방 남자는 그에 앞서 자기 앞사람을 떠밀지 않고 탔던걸까?
그랬다. 어차피 다들 떠밀거라 여기며 모두가 그냥 떠밀고 있었다. 떠밀릴까 봐 떠밀고 보는 이들로 붐비던 어느 아침의 출근길, 터지지 않지만 실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하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