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화면에 이미 비친 우리

넷플릭스 <블랙 미러>, 쨍그랑.

by 차돌



[BLACK MIRROR]
반전과 풍자, 미래 기술에 대한 경고 등을 탄탄한 스토리에 담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국의 SF 앤솔러지(여러 작품을 모아놓은 작품집) 드라마. 시즌3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어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최근 선보인 시즌5는 이전보다 소프트하고 대중적인 내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자 기기의 검은 화면을 뜻하는 '블랙 미러'라는 제목이 드라마 전체의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낸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님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스토리의 향연이다. <블랙 미러>, 까만 화면 가운데 글자와 아이콘이 점멸하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화면에 금이 가는 인트로부터가 인상적인 이 드라마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고자 한다.




반드시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다.


넷플릭스 시즌5 회차 정보 화면


고백한다. 사실 난 언젠가 블랙 미러 시즌1의 첫 번째(정해진 순서는 없으나 가장 위에 있는 에피소드이므로) 작품 '공주와 돼지'를 보고 실망했었다. 자극적인 소재와 급진적인 전개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불쾌함마저 느낀 채 다음화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로도 시리즈가 계속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은 간혹 접할 수 있었으나, 다른 볼거리가 충분한 상황에서 딱히 블랙 미러와 인연이 닿지 못했다.


이왕이면 블랙미러로 시작해 보세요.


그러나 과연 넷플릭스였다. 그리고 브런치였다. 슬슬 결제를 앞두고 있던 차에 반갑게도 주어진 이용권과 블랙 미러 굿즈, 그리고 시즌5에 대한 소식까지. 지하철을 오며 가며, 잠자리에 들기 전 블랙 미러의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완전히 감탄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고 보면 난 왕좌의 게임 1화를 보고 큰 감흥 없이 잊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빠져들어 밤낮으로 정주행 했으니, 주변의 극찬과 상관없는 슬로우 스타터인 걸까. '보게 될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본다'는 해석을 미디어에 적용하는 건 과도한 해석일까.


다시 말하자면 블랙 미러는 연작 시리즈가 아니므로 각각의 단편으로도 훌륭한 완결성을 지닌 수작이다. 아직 블랙 미러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시즌5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스미더린', '레이철, 잭, 애슐리 투' 어느 작품부터 보기 시작해도 반드시 빠져들 거라 확신한다. 보다 대중적인 흥행을 노렸기에 파격과 반전이 약하다는 평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입문용으로는 최신작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아니라면 에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즌3의 ‘샌주니페로’나 시즌4 ‘USS 칼리스터’부터 확인해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할 법한 미래



21세기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과 휴대폰, 모니터를 보며 지낸다.
하지만 전원이 꺼지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를 비추고 있는 어두운 거울에 불과하다.

(링크 : <블랙 미러>, 근(近) 미래를 미러링하다 - 프레시안 기사)


블랙 미러의 기획자이자 각본가인 찰리 브루커가 밝힌 견해다. 전자 기기의 화면이 꺼진 뒤 까만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말이다. 획기적으로 발전한 첨단 기기를 통해 놀랍도록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그 기술력에 새삼 감탄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멍-해지거나 무력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블랙 미러>는 다양한 소재, 여러 관점으로 실제로 그러할 법한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유토피아도, 완전한 디스토피아도 없다



<블랙 미러>가 그리는 미래는 가상의 현실이지만 사실적이고 자연스럽다. 작품의 배경이 '이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열린 미래'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중 어떠한 작품도 완전한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를 가정하지 않았다. 극적인 긴장과 재미를 위한 갈등은 첨단 기술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비롯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술 자체가 악(惡)은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기술의 진보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기보다 그걸 이용하는 인간의 심성과 사회 환경에 따라 선용되거나 악용될 여지가 각각 충분한 것이다.


회차마다 달라지는 주연 배우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첨단 기기와 SNS를 이용한다. 어떤 이는 관자놀이에 특수 장치를 부착해서 가상 세계에 접속하고, 어떤 이는 사방이 미디어 장치인 공간에 머물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들은 누구나 해봤을 상상인 듯하다가도, 어쩌면 저렇게 참신하게 묘사했나 싶을 정도로 획기적이다. 게다가 이런 세상에서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의 짜임새도 탁월하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SF인 동시에 적절한 판타지를 가미한 드라마가 바로 <블랙 미러>라고 할 수 있겠다.


대중의 속성, SNS와 인간, 테크놀로지와 휴머니즘, 정치와 미디어...

이 모든 것들을 재미있게 버무린 드라마 <블랙 미러>와, 그걸 전달하는 미디어 플랫폼의 강자 넷플릭스. 어쩌면 눈 앞에 있는 까만 화면들은 진작부터 우리를 환하게 비춰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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