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시사회 리뷰
* 브런치 무비패스로 감상했습니다. 스포 없습니다.
이럴 때 하필 코미디라니. 코미디 영화라니.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의 티켓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잠시 혼란했다. 프랑스에서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는 포스터 문구 같은 건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영복을 입고 멍하니 서 있는 아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었지만, 그뿐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마침 이런 영화라니,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좋잖아?
소리 내어 웃었다. 뭉클한 감동도 느꼈다. 삶을 비극으로 느끼던 순간 영화관에서 희극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혹은 '밥만 잘 먹더라' 따위의 위로나 격려가 결코 아니었다. 영화는 적당히 유쾌하면서도 적당히 진지하게,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삶의 희비극을 보여줬다. 즐거운 상태의 관객은 더 즐겁게, 슬픈 상태의 관객은 슬픔을 잊게 해주는 훌륭한 영화였던 것이다. 과연 정통 코미디 영화로는 드물게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비극의 풀장에서 솟구친 아재들의 희극
어딘지 힘없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 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살아가는 2년 차 백수로, 아침마다 항우울증 약을 챙겨 먹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에서 남자 수중발레 팀원 모집 공고를 보고 호기심을 갖는 베르트랑. 정해진 연습 시간에 가 보니 이게 웬걸. 여자 코치 한 명이 심드렁하게 호루라기를 부는 가운데 오합지졸 아저씨들이 수영장에서 제멋대로 허우적대고 있다.
파산 직전의 사업가 마퀴스, 히트곡 하나 없이 캠핑카로 떠도는 록커 시몽, 가정사로 스트레스가 많아 항상 시니컬한 로랑, 수구 선수들에게 놀림받는 수영장 관리인 티에리... 베르트랑 못지않게 이래저래 힘겹게 살아가는 중년의 아재들은 수중발레 연습이 끝나면 사우나도 하고 맥주도 마시며 서로의 신세 한탄을 하기에 바쁘다. 베르트랑 또한 이들과 어울리며 점점 마음의 경계를 허물어 간다. 누구 하나 잘난 척할 여지없이 저마다의 모습 그대로가 서로에게 위안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리라.
Sink or Swim
- 자력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완전히 망하느냐 하는 처지에 있다 (Naver 어학사전)
- ① 흥하든 망하든 ② 죽든지 살든지 ③ 운명을 건 (Daum 어학사전)
국내에서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이란 제목으로 개봉할(7월 18일) 이 영화의 영어 이름은 <Sink or Swim> 이다. 직역하자면 '가라앉거나, 수영하거나'인데, 굳이 사전을 찾지 않고도 확 와 닿는 짧고 명쾌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만큼 영화의 의미를 간결하게 잘 담아낼 수 있는 단어의 조합도 없지 않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베르트랑과 친구들은 수중발레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다. 얼핏 보면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프랑스 중년 아재들의 참신한 코미디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시사회를 보고 난 이들이 한결같이 좋았다고 꼽는 오프닝, 엔딩 시퀀스의 메시지를 스토리에 재미있게 담아낸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동그라미에는 네모가 들어가지 않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듯, 우리 모두는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사회에 길들여져 있다는 내용이 바로 그 메시지다.
수중발레는 게이들이나 하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의 조롱, 네 인생은 왜 그 모양이냐는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 이런 것들에 휘둘리기만 했다면 중년의 아재들은 바닥 없는 풀장에 계속 가라앉기만 했을 거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했고, 즐겼고(즐기지 못해도 견뎌냈고), 멋진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도 매우 매우 유쾌하게, 그리고 다 함께.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는 티를 내기도, 그렇다고 떠오르리란 자기 위안을 드러내기도 뭐한 나, 30대 청년은 이렇게 코미디를 통해 4,50대 아재들과 충분히 교감했다. 벌써부터 이 영화를 주위에 적극 추천하고 있는 이유다. 사람들마다 가라앉아 있는 마음의 깊이는 다를 것이다.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도 각각 다를 게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든 숨은 쉬어 가야 계속 헤엄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은 관객 모두가 한껏 숨을 크게 들이쉬고 호흡할 여유를 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