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고 제주에서 지내기 3편_역시 함께 먹는 밥과 술은.
어느덧 3일째 아침을 맞이했다. 전날 갔던 해변과는 반대 방면인 내륙으로 산책을 나섰다. 산을 끼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너른 황토밭 너머로 하늘 아래 오름의 풍경이 몹시 잘 어울렸다. 바다만큼이나 탁 트인 풍경에 가슴이 다 시원했다. 걸으면서는 대개 경치에 감탄하거나 쓰다 만 원고에 대해 생각했는데, 문득문득 이틀간 혼자 먹은 밥과 반찬들이 맛있게 떠오르기도 했다.
혼자 다섯 끼 정도를 해결하는 동안 마트에 두 번 다녀왔고, 소량으로 산 식재료들은 거의 먹어치운 상태였다. 매 끼마다 소박한 반찬들이 전부 맛있었으나, 이제 한 끼 정도는 특별히 배불리 먹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친구가 마침 촬영 차 제주로 온다는 거였다. 일정도 넉넉한 편이라 바람도 좀 쐬고 싶다기에 내 숙소에서 하루를 같이 지내기로 했다. 실은 일주일 내 혼자만 있어보려 했으나 이틀 만에 심심해진 차였다. 어느 지점에선가 글쓰기도 막혀서 적이 답답하기도 했고... 까지로 핑계는 끝. 아무튼 산책에서 들어오는 길에 그리하여 세 번째 장을 봐서 둘이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제주산 냉동 삼겹살을 큰 팩으로 하나 구입했다. 메인 요리가 쉽게 정해지니 나머지는 금방이었다. 쌈 채소와 마늘, 쌈장, 그리고 새콤달콤한 비빔면. 계속 혼자였으면 아마 그렇게 안 샀을 텐데, 둘이라서 그리 해 먹으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제주에서라고 꼭 비싼 외식을 안 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단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점심을 든든히 먹고는 친구의 사진 촬영도 도울 겸 하여 곽지 해변으로 갔다. 렌터카가 없었기에 갈 때는 버스를 탔고 올 때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적당히 걷다가 버스를 타려던 게 결국 끝까지 걸어서 와 버렸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둘 다 환기가 필요하던 때라 그랬던 듯하다. 제주 해변은 웬만한 이 모두가 지닌 저마다의 사정을 품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혼밥이 아니라 함께 먹어서 좋은 점 중의 또 하나는 식당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각기 다른 메뉴를 시켜서 풍족하게 맛볼 수 있던 것이다. 곽지 해수욕장 바로 앞에 위치한 보말 음식점이었는데,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왔다.
함께 집밥을 해 먹고, 해변에서 촬영을 하고, 이번엔 함께 외식을 하고, 해안을 따라 한참 걷다 보니 하루는 저물었다. 숙소에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한 번 더 들러 회와 술을 샀다. 전날 홀로 홀짝이던 맥주도 좋았으나, 역시 둘이기에 가능한 '제주 가정식 술상'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혼밥도, 혼술도 참 좋다고 생각한 지 3일도 되지 않아 나는 역시나 함께인 식사가 훨씬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