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느끼한 산문집>의 탄생 비결 엿보기
요즘 내 화두를 누군가 던져 놓았길래 바로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브런치북 대상 작가의 토크 티켓을 판매하는 29CM 스토어의 상품 페이지였다. 책 소개와 작가 소개가 술술 읽혔다. 그러고 보니 노들서가 한편에 놓인 그녀의 에세이와 이름을 얼핏 본 듯했다. 17일 저녁 7시 반 강남역, 오케이. 어차피 요새 저녁 약속도 잘 없다.
강이슬 작가의 에세이 <안 느끼한 산문집>을 단숨에 읽었다. 사실 글이 별로면 티켓을 환불할 생각이었다. 돈 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맞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삿짐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저녁 시간을 보내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책을 보니 그녀가 더 보고 싶어졌다. 최근 본 영화 <양자 물리학>의 주요 대사를 빌리자면, 뭔가 나와 '파장이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SNL코리아, 놀라운 토요일' 방송 작가라는 괜찮은 필모에도 불구하고 강이슬의 글에는 가난과 비루함에 대한 단상이 가득하다. 투박한 내용조차 세련된 필치로 담아낸 덕에 우울하지 않고 재밌었다. 솔직하되 안 부담스럽고, 친절하되 안 느끼한 에세이였다.
아는 사람 중에 방송 작가들이 더러 있다. 자주 봐 온 사이는 아닌지라 그들의 일과 일상, 특히나 고생스럽다는 막내 작가의 애환은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원래 어디든 신입 사원은 힘들잖아'란 나의 일반화가 지인의 특별한 사연에 공감할 기회를 차단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생판 모르던 강이슬 작가가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쓴 글은 내게 특별히 꽂혔다. 숫자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녀가 대놓고 밝힌 본인 월급과 근무 시간을 보며 새삼 정확히 느꼈다. '아, 신입 사원 때 난 월급 루팡이었구나'.
강연은 그녀의 글만큼이나 솔직했다. 귀한 시간 할애해서 와 주신 청중에게 감사하다는 친절함도, 책을 안 보신 분들은 꼭 사 보셔야 곧 있을 이사 비용을 마련할 거란 너스레도 결코 안 느끼했다. 전체적인 감상평은 이 정도로 갈무리하는 게 낫겠다. 북토크의 내용, 작가의 강연 콘텐츠를 드러내는 건 솔직한 글쓰기가 아니라 영업 방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강연의 핵심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어떻게 하면 '나를 향한 글쓰기'를 통해 자기 객관화를 잘하여 솔직한 나의 글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과연 솔직한 에세이 쓰기의 득과 실은 무엇인가. 감정이 차올랐을 때, 가라앉았을 때의 글쓰기는 각각 어떠해야 좋은 글이 나오는가.
아, 물론 강이슬 작가의 강연이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증과 설교 형식이었던 건 아니다. 본인의 저서를 적절히 활용해 뽑아낸 줄거리에 뼈대도 명확하고 그 안에 자기 확신까지 있다 보니 연사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받아 적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는 그녀가 추천한 에세이 <마음 사전>을 한 권 샀다. <안 느끼한 산문집>에서 5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에피소드(?)를 털어놓은 강이슬의 강추 서적이라 읽기 전부터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걸 읽고 괜히 새벽에 시나 에세이를 써서 올리거나 하는 일만 주의하면 될 일이다.
솔직한 글쓰기는 정말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글을 멋지게 쓰려고 하다 보면 느끼해지기 쉽다. 다행히 이걸 깨닫고 느끼함을 덜어내려고 하다가는 그나마 있던 솔직함마저 덜어내어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곤 한다. 나는 강이슬 작가가 이 모든 과정을 통달한 덕에 <안 느끼한 산문집>을 펴낼 수 있었다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강연 말미에 그녀는 강조했다. 즐거워서 잘 썼다고. 상투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내 안의 재밌는 썰들이 마구 떠올랐다. 오랜만의 추억 소환에 혼자 피식할 지경이었다. 앞으로 즐겁게 쓰기로 다시 다짐했다. 조커처럼 나만 웃는다거나, 새벽에 쓰느라 이불킥 할 일만 없으면 그럭저럭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