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_1
부자의 최대 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모르겠는데?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가령 내가 반 친구한테 뭘 좀 하자고 하면 상대는 이렇게 말한단 말이야. '나 지금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그런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된다면, 절대 그런 소리를 못하게 돼. 내가 가령 지금 돈이 없어 그런다면, 그건 정말 돈이 없다는 소리니까. 비참할 뿐이지. 예쁜 여자가 '나 오늘은 얼굴이 엉망이니까 외출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같거든. 못생긴 여자가 그런 소릴 해봐,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런 게 내 세계였던 거야. 지난해까지 6년 간이나.
<상실의 시대> 108P.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대화 中
미도리의 부모님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계층'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녀는 상류층 자녀들로 가득한 사립 고등학교에 다녔다. 자유분방한 대학생으로 성장해 당시의 경험을 '쿨하게' 털어놓는 미도리의 대사가 무척 인상적이다. 그걸 듣고 답하는 와타나베의 위로 또한 그렇다. 소설을 관통하는 둘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화이기도 하다.
부자의 최대 이점이라 하면 보통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는 여유', '돈에 구애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유' 따위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도리의 대답은 달랐다. 그녀가 말한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음'은 부자가 어쩌다 겪는 잠시 잠깐의 반응만을 지칭한다. 요컨대 부자가 돈이 없다고 할 만한 상황은 '당장' 돈을 지니고 있지 않을 때뿐인 것이다. '늘' 돈이 없기에 정작 돈이 없단 말은 감추고 싶은 이들로서는 '돈이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자들의 순간마저 부럽다.
그냥 어릴 때 부모님 따라 몇 번 갔지. 여행을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과 애들이랑 가면 그래도 재밌겠다. 아, 말 나온 김에 이번 방학 때 가면 좋겠네.
대학 동기와 유럽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친구는 그러나 프라하며 바르셀로나, 로마 등 유명한 도시는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여행 경험이 많았다. 반면에 한 군데도 가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대화가 이어질수록 헛헛한 마음이었다. 내가 유럽에 '가면 좋겠다'라고 밝힌 희망의 언어에 비해, 똑같은 말이지만 그의 것은 훨씬 빨리 실현될 현실의 언어로 느껴졌다. 심지어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수차례 말했고, 그는 그렇지 않노라고 심드렁하게 밝혔는데도 말이다.
알바비를 긁어모아 졸업 여행으로나 가려던 나의 로망을 친구는 방학에 당장 가면 좋겠을 마실 정도로 여기는 상황이 묘했다. '이번엔 내가 낼 차례'라며 기어코 커피값을 낸 게 아깝단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러다 곧 돈 만 원에 얽매이는 나 자신이 싫어져서 다시 대화에 집중하려고 맞은편의 친구를 봤다. 녀석이 들이키고 있는 음료는 프라푸치노였고, 난 아메리카노였다. '에잇 다음엔 나도 프라푸치노로 얻어먹을 테다.' 내 속은 그렇게 금방 다시 좁아졌다.
야 말도 마, 요새 힘들어 죽겠다.
그날도 나는 야근으로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었다. 퇴근길인데 한 잔 하지 않겠냐고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요즘 좀 바쁘다고 거절한 뒤 요새 넌 어떻냐고 물었다. 바람도 쐴 겸 전화를 받으러 나왔기에 서로의 근황이나 나누려고 통화를 이어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는 푸념을 시작했다. 상사가 어떻고 월급은 어떻고... 듣는 족족 그럴 만한 투정인 동시에 그래서 어쩌랴 싶은 나열이기도 했다.
대형 금융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연봉은 꽤 높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다 받은 만큼 일하는 거랬다. 그런데 몇 달 전 이직한 스타트업에서 분투하던 나로서는 예전과 달리 그의 말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다. '받은 만큼 일하는 거면 나는 진작에 퇴근하는 게 맞지 않나?'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날 나는 친구에게 일이 힘들단 말은 하지 않았다. 녀석이 힘들면 나는 그래도 힘들지는 않아야 뭔가 균형이 맞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다 보면 미도리의 성격과 행동이 변하는 건 그녀의 가정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오히려 어떤 일로 인해 그녀의 사정은 어려워진다)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져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녀가 와타나베에게 '부자의 최대 이점'에 대해 당차게 주절댈 수 있던 것도 실은 그렇게 바뀐 뒤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부자란 꼭 경제적인 상태가 아닌 마음의 상태에 따른 '가진 자'를 일컫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여행도 야근도 돈이 많으면 더 쉬운 선택 사항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어온 바로는 재벌이 아닌 이상 돈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고, 그 수준이랄 것도 하늘과 땅 차이까지는 아니다. 그러므로 좀 뻔한 말이지만 '부자'와 '빈자'는 결국 마음의 자세로 갈리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내가 만약 위의 두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유럽에 가면 좋겠단 말을 더 희망차게 할 것이고, 나도 일이 힘들어 죽겠단 말을 더 능청스럽게 하리라.
앞서 소개한 미도리의 긴 이야기 뒤에 와타나베는 짧게 한 마디로 답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처럼 쿨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렇게 대답했을 뿐인 와타나베의 말이 미도리에게 왜 위안이었는지는 이제 좀 알 듯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잊게 된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