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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 같은 사람

차돌박이나 삼합 말구 차돌이요 차돌

by 차돌


어릴 때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착각했던 데는 성씨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는 나와 같은 '석'씨를 주위에서 본 적조차 없었기에 이름 석 자부터 남다르다고 여긴 것이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내 이름을 들으면 석 씨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고, 그런 관심(?)이 나는 결코 싫지 않았다.




ha60_43_i6.jpg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신라의 시조는 누구일까요?'

특별함에 대한 환상이 깨진 건 한자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어느 날 나는 역사 동화에서 신라의 시조가 박, 석, 김 씨라는 사실을 알고는 흥분했다.(연맹 왕국이었던 고대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알에서 나온 석탈해라는 위인이 왕이었다지 않은가! 그날 저녁 나는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아버지께 물었다.


아빠, 우리 신라 왕족이야?
(......)
석탈해가 우리 조상이래!
여보~ 저녁은 아직이야?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아버지는 대답이 곤란하면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신라 왕족 석(昔)씨와, 내 성의 한자 석(石)은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나는 석탈해의 후손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우리 조상도 매우 훌륭한 분들이라셨지만, 시간이 지나도 역사책에서 석 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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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엔 친구들도 네 성의 석이 돌 석(石)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면 어떻게든 놀릴 게 예상됐지만(날이 갈수록 명확해졌다)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석가모니라고 부르던 애들이 돌 석이니 석수니 하며 바꿔 놀린다 한들 나도 그들의 별명을 부르고 서로 놀리며 놀던 시절이었다.


여전히 아들이 특별하길 원했던 우리 부모님만은 돌도 다 같은 돌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를 부르신 애칭이 바로 '차돌'이었다. 야무지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맑은 빛을 띤 돌이라는 거였다. 흔히 쓰던 단어는 아니었기에 차돌은 차돌대로 또한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특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차돌삼합.jpg


한동안 잊고 있던 차돌이 다시 떠오른 건 얼마 전 차돌 삼합을 먹으면서였다. 꽤 비싸지만 꽤 맛있어서 특별한 음식 앞에서 문득 브런치 작가명이 떠올랐다. 남들이 불러주기 전에 내가 먼저 부르고 싶어서 정한 필명은 바로 '석작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들 작가가 되면서부터 난 '석작가작가' 님으로 불렸고, 그게 겸연쩍어 단지 '석'으로만 소개를 할 수도 없어 애매하던 터였다. 유노윤호도 아니고 작가작가는 좀 곤란한 호칭 아니겠는가.


[차돌]

1. 이산화규소로 이루어진 육방 정계의 광물, 유의어는 석영.

2. 야무지고 단단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가 특별하다고 착각하던 때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어떻게 불리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떠하다고 믿는 바를 지켜가고 싶은지도. 야무지고 단단한 차돌 같은 사람, 그게 실은 나였음을. 이상 석작가작가였다가 개명한 차돌 작가의 짧은 소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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