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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Dec 04. 2019

초급과 중급 사이의 애매함

수영장에서

 



  가끔 수영을 즐긴다. 

실력은 약간 애매하다. 초급은 확실히 아닌데 중급이라고 하기엔 좀 부끄럽다.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는 강습으로 익혔고, 접영은 간신히 꿀렁대는 수준이다. 수영을 잘하는 이가 보면 딱 알 만한 실력이다.


  자유 수영 레인을 택할 때 초급에 들어가진 않는다. 자존심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안 맞아서다. 키판을 잡고 발만 차는 사람, 레인 중간에 멈춰 가쁜 숨을 쉬는 사람 등이 있는 초급 레인은 아무래도 답답하다. 그들에 비하면 차라리 난 물개다.

 

저 아닙니다



 

  해서 보통 중급 레인에서 수영을 한다. 쉬엄쉬엄, 적당히 운동이 될 만큼만 즐긴다. 그런데 이게 좀 애매하다. 내가 보기엔 고급에 가도 될 정도의 실력자들과, 초급에 가면 좋겠을 이들이 섞여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시설 여건 상 어느 수영장을 가든 모든 레인에는 사람이 많다. 지금껏 수영장에 100번을 가봤다고 하면 95번쯤은 어김없이 붐볐다. 때문에 수영장에서는 늘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비켜주거나, 앞지르면서 물살을 헤쳐야 한다.


  이런 수영장이야말로 사회의 축소판 같아 보인다. 

사람들은 각자의 실력대로 레인을 택해 헤엄을 친다. 초급, 중급, 고급. 누가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저마다의 강습 상황에 따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다. 실내 풀의 크기는 한정적이다 보니 어느 레인을 택하든 모두는 서로 부대끼지만 대개 중급이 가장 치열하다. 알아서 눈치를 보고 헤엄칠 공간을 확보해야만 끝에서 끝을 쉬지 않고 오갈 수 있다.





  물 밖에서 사람들을 레인별로 구경하면 이렇다. 

먼저 초급 레인. 해맑은 아이들과 뻣뻣한 어른들이 천천히 움직인다. 다음은 중급. 이곳이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초급으로 봐도 될 만한 이가 몸을 한껏 비틀며 헤엄친다. 그야말로 자유로워서 자유형이다. 그 뒤를 쫓는 이는 배영 중인데, 앞선 이의 자유형보다 빨라 거리는 점점 좁혀진다. 다음은 고급 레인. 접영으로 멋지게 물살을 가르는 이들이 눈에 띈다. 여기도 역시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적당히 빨리 오가기에 중급만큼 붐비진 않는다.


  수영을 하다가 어쩐지 피곤할 때가 있다. 숨이 차서가 아니라 사람에 치여서다. 천천히 수영하고 싶은데 초급을 가자니 싫고, 중급에서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초급과 중급 사이의 애매함이랄까. 누구는 경쟁하듯 물살을 가르고, 누구는 조심스레 물살을 잡는 중급 레인. 민첩하게 수영할 의지는 없고 뭉그적대느라 방해할 생각도 없는 나로서는 그저 대여섯 명만 한 레인을 쓰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의 인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있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정한 자유수영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준비운동을 충분히 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부지런히 헤엄칠 것. 그날의 레인 사정에 따라 눈치껏 속도를 맞춰 사람들과 섞일 것. 내가 방해받길 원치 않는 만큼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쉴 땐 벽에 바짝 붙을 것.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게 수영장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아, 좀 덜 피곤하게 자유수영을 할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한다. 강습을 더 받아서 고급 실력을 장착하고 수영장에 가는 것이다. 멋지게 접영을 하면 다들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겠...... 근데 이제 날이 너무 추우니까 강습은 미루는 게 좋겠다. 집 근처에 수영장도 없다. 이렇게 난 10년 째 중급 수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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