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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Dec 17. 2019

월세와 리바운드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하나?




  <슬램덩크>를 통해 널리 알려진 농구 용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아마 '리바운드'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강백호의 특기인 데다 슛이나 패스 등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슛한 공이 백보드나 림에 맞고 튕겨 나오면 이를 잡아채서 공의 소유권을 따내는 게 바로 리바운드다. 수비하던 팀은 공격으로 전환할 수 있고, 공격하던 팀은 재차 공격할 수 있기에 농구에서 매우 중요한 플레이다.


  뜬금없이 리바운드가 떠오른 건 다름이 아니라 엊그제 월세를 내면서였다. 갑작스레 자취를 하며 월세를 내는 세입자와 받는 집주인의 입장 차를 피부로 느껴보니, 이게 꼭 리바운드 상황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더랬다.





  리바운드는 직접적인 득점 행위는 아니지만, 상대의 공격 기회를 차단하는 동시에 우리의 득점 가능성을 살린단 점에서 스코어에 실질적인 보탬이다. 예를 들어 두 팀의 점수가 A(48), B(50)인 상황에서 A팀의 2점 슛이 실패했다고 치자. 이때 A팀이 리바운드를 잡아 득점에 결국 성공하면 스코어는 A(50) 대 B(50)가 된다. 하지만 리바운드를 B팀이 따내고, 이를 공격으로 이어가 2점을 더 넣는다면? A(48) 대 B(52)가 된다. 리바운드 하나로 인해 동점이 될 수도 있던 스코어가 순식간에 4점 차로 벌어지는 것이다.


  아아, 매달 내는 월세와 받는 월세의 차이가 이와 같지 않을는지. 

내가 느닷없이 자취를 하겠다 하자 더러 말리던 친구들의 으뜸 논리가 금전적인 손실이었다. 걔 중엔 벌써 세입자를 받아 월세 수입을 챙기는 녀석도 있는데, 비결이 은행 대출이든 아빠 대출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닐지어다. 막상 집주인이 되고 보니 셋방 살이를 하겠다는 친구가 더욱 걱정되어 건넨 조언이리라(고 믿는다).  



  아주 단순하고 과격하게 세입자와 집주인의 통장 잔고를 비교해 보았다. 첨단 엑셀을 사용해 수식(B-A)을 넣은 것이니 의심하지 마시길. 분명히 월세를 50이라고 가정했는데, 집주인과 세입자의 차이는 다달이 100씩 벌어진단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타의 수입이나 지출 따위는 배제한 비교이니 참고만으로 족할 테다. 어쨌든 그 덕분에 잔고 차이는 명확히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 슬램덩크 이야기를 잠깐 더 해 보자. 

강백호의 특출난 재능을 알아본 주장 채치수가 리바운드를 가르쳐 주며 알려주는 기술이 있다. 그건 바로 스크린 아웃, 다른 말로는 박스 아웃이라고도 하는 농구 용어다. 상대팀이든 우리팀이든 누군가 슛을 한 순간 리바운드에 대비해 골 밑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행동을 뜻한다.


  오늘도 수많은 집주인들은 착실히 월세를 받고, 이렇게 생긴 돈으로 지출을 하며 스크린 아웃을 하리라. 그보다 많은 세입자들은 착실히 월세를 내고, 여기서 생긴 지출을 메우려고 박스 안을 기웃거리며 수익을 도모하겠지. 이렇게 진행 중인 자본과 부동산의 시합 가운데 나는 허구헌 날 리바운드를 놓쳤나 보다. 허허, 월세 내는 게, 리바운드를 놓치는 게 딱히 나쁜 건 아니잖아. 반대도 마찬가지고. 스크린 아웃에는 몸싸움이 필수인데 원체 그런 걸 못하기도 하고 싫어하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래, 한 달 중 하루만 남의 집이란 알람이 울리면 월세를 내자. 대신 스무아홉 날 만큼은 집처럼 헤헤거리며 살면 되지 뭐.


난, 천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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