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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an 03. 2020

"새해엔 더 자주 보자"

(feat. 꽃길만 걸으세요)



  해마다 해가 갈 때면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맥 버블에 취했던 20대 초에 비하면 급격히 줄었지만, 연말연초란 명분은 뜸하던 연락도 기어이 하게 만드는 것이다. 


  직장 채팅방과의 연은 끊었고, 이런저런 단톡방에서도 벗어난 지 오래인 나로서는 새해 인사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형식적이라거나 의례적인 '관리' 차원의 연락들은 필요 없으므로, 그렇지 않은 안부 인사야말로 오로지'관계'에 달린 진심이기 때문이다.



  19년 마지막 날에서 20년 첫 날로 바뀔 무렵, 내 주위에는 일본인 여행객 둘과 중국인 여행객 넷이 있었다. 마침내 00시가 되자 나는 한국을 대표(?)해 그들에게 'Happy new year!'를 외쳤고, 그들은 환히 웃으며 같은 인사로 답했다. 한-중-일 3국 시민 간의 기묘한 새해맞이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카톡 창을 열었다. 낯선 외국인들과 인사하고 보니 친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거였다. 더러는 이미 연락이 와 있어서 반갑게 답부터 했다. 그러고 나서 몇몇 지인에게는 내가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넸다. 마음에서 우러난, 목적 없는 안부 인사였다. 그런데 이들 채팅방에서 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주로 친한 친구들과의 카톡 인사말 가운데,

새해엔 더 자주 보자

란 말이 어김없이 쓰였던 것이다.


  그랬다. 새해 인사를 하며 돌이켜 보니 우린 지난해 드물게 만났다. 어느새 아이 둘의 아빠가 된 친구, 근무처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진 친구, 대학원 첫 학기라 저녁 시간이 어렵다던 친구, 신혼인 친구, 그저 잘 사느라 바쁜 친구, 그냥 연락 자체가 안 되는 친구... 이 모두에 속하지 않아도 마음이 분주하단 핑계로 그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 나란 친구. 결국 해를 넘기면서야 뜸해진 만남에 놀란 우린 누가 먼저랄 것 없이'새해엔 더 자주 보자'고 다짐하는 거였다. 



  과연 새해에는 친구들과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밥 한 번 먹자'처럼 의례적인 인사로 내년에도 같은 다짐을 주고받을지 모를 일이다. 새해 초부터의 다짐을 비관하고자 함은 아니다. 난 헤어질 때 쿨한 척 돌아서는 사람보단 '언제 밥 한 번 먹자'같은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 정이 간다. 비즈니스 관계도 아닌데 설령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 어떠한가.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버거운 서른마흔 사이의 우리일진대, 더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을 내뱉는 자체로도 서로에게 위안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올해 새해 인사로는 '꽃길만 걸으세요'란 3장짜리 이미지가 유행이었던 것 같다. 그건 그것대로 반가웠으나 아무래도 덜 친한 이들과의 채팅방일수록 비슷하여 피식 웃음도 났다. 


  꽃길만 걷기는 힘들 걸 알면서도, 자주 보기 쉬워질 리 없단 걸 알면서도 새해를 긍정하는 마음만은 모두 반가워서 좋은 1월 1일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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