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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an 10. 2020

타고난 것과 타고나지 않은 것.

알고 보면 다 타고났네?


 

  해를 넘길수록 노력해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다고 느낀다. 

비관이나 현실론 따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노력이나 성취의 부족 같은 데서 원인을 찾을 생각도 없다. 다만 예전에는 외면하려 했던 타고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점차 받아들일 뿐이다. 나이를 먹듯,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내 사례를 잠깐 들어볼까 한다. 바꾸려고 해 봤으나 도무지 바뀌지 않는 타고난 기질이 금세 다섯 가지나 떠오른다.


1. 인간관계에서 무뎌지기(무던해지기)

  좋은 관계는 좋은 대로 빠져들어 의지하고, 나쁜 관계는 쉬이 떨치지 못해 신경을 쏟곤 한다. 어느 쪽이든 자기중심을 지키지 못하면 상처 받기 쉬울 수밖에 없는 상태다.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에 따라 컨디션에 영향을 받으므로 관계에 더욱 집중한다. 관계 지향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리라 본다.


2.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하기


  특히 직장에서 필요성을 느끼고 바꿔보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우선순위와 효율이 중요한 업무에서도 여러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느라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던 것이다. 이는 배려라는 형태의 장점으로 발현되어 원만한 조직 생활을 가능케 한 반면, 성과 중심 체계에 맞지 않는 스트레스 요소이기도 했다.


3. 필요 없는 물건 버리기


  쓸모없는 물건들은 버려야 한다며 평소엔 쿨한 척하는 내 방엔 그러나 10년 된 공연 티켓이라든지 전시회 쇼핑백 뭉치가 굴러다닌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버리지 못하다 보니 대청소 때만 마주하는 물건들도 쌓이고 쌓여서다. 세상 모든 것들엔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개ㅃ, 머리론 알겠는데 몸으론 안 되는 게 비단 브레이킹 댄스뿐이랴. 존재 의의를 상실하고도 방에 남은 물건들은 언제쯤 내게 보은할 것인가.    


4. 길 찾기


  길치...라고까지 하기엔 자존심이 좀 상하지만 서너 번 다닌 길조차 헷갈리기 일쑤다. 어렸을 땐 이게 노력이나 기술로 극복 가능할 줄 알았지만 스마트폰 지도 앱을 쓰는 요즘도 헤매긴 마찬가지다. 처음 본 길도 척척 다니는 이들을 마주할수록 길 찾기란 타고난 생체GPS 성능에 달렸단 사실을 확인한다.


5. 지난 일 돌아보지 않기


  과거에 자주 얽매인다. 뒤를 너무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단 명언 같은 걸 수차례 되새겨 봐도 그렇다. 어반자카파의 노래 중에 '거꾸로 걷는다~ 거꾸로 걷는다~'가 종종 내 노래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후회든 추억이든 내겐 모두 소중한 기억이니까...같은 말로 위로 삼을 순 있을지언정 뒤로 걷느라 더딘 속도를 어찌할 도리는 없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위에 나열한 성향들은 타고난 것이라 봐야 할까, 타고나지 않은 것이라 봐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 생각의 출발은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었다. 요컨대 타고나지 못했다고 여겼기에 타고난 듯이 바꿔보려 했단 뜻이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괜찮다고 여겨지는 성격,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의 타고난 성향조차 타고나지 않은 측면으로 바라본다.    


  타고나지 않은 걸 극복하려 애쓰기 전에 생각을 한 번 달리하면 어떨까? 내 경우를 다시 놓고 보면 이런 식이다.


1. 인간관계에 무딜 수 있는 성향을 타고나지 않음 =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성향을 타고남

2. 한 번에 하나씩 집중하는 성향을 타고나지 않음 = 동시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성향을 타고남

3.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는 성향을 타고나지 않음 = 중요치 않은 물건도 소중히 여기는 성향을 타고남

4. 길눈에 밝은 성향을 타고나지 않음 = 목적지가 아닌 주변 정황과 사람 구경을 중시하는 성향을 타고남

5. 지난 일을 쉽게 떨치는 성향을 타고나지 않음 = 과거를 소중히 여겨 성찰하는 성향을 타고남


  와, 이렇게 놓고 보니 타고나지 않은 건 다섯 개 줄어든 반면 타고난 건 다섯 개나 늘어났다. 역시 노력해서 바꾸지 못할 바엔 타고난 것들이나 잘 활용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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