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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Feb 06. 2020

당신의 행복 점수는 몇 점입니까?

뜸 들이진 말구, 지금 생각나는 대로요.


차돌 작가님은 행복 점수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이세요?


  친하게 지내는 일러스트 작가 P가 갑자기 내게 던진 질문이다. 이런 류(?)의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사이인지라 새삼스럽진 않았으나, 막상 점수를 매겨 보려니 신선한 느낌이었다. 길게 시간을 두고 답할 게 아니란 판단에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답을 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P작가님은 몇 점이신데요? 


  난 그가 80점 정도의 답변을 내놓을 거라 예상했다. 성품이 온화하고 매사에 서두르는 법 없는 느긋한 그라서 일단 100점 만점, 평상시 창작의 고뇌에 빠지는 작가로서 받을 스트레스를 감안하여 -20점. 대략 이렇게 측정한 것이다.


 제 행복 점수는 90점입니다.

 

  오오, P는 내 예상보다 행복한 작가로구나. 그런데 뒤이어 하는 그의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저는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90점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어요.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그는 친해진 뒤로 허세 개그를 자주 던지는데, 이번만큼은 진지했다). 설명인즉슨, 자기는 작은 일들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비관에 빠지는 성격이 아니라 딱히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다만 모든 게 완벽히 행복한 상태라 자신할 수는 없기에 10점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는 거라고.





  또한 그는 덧붙였다. "행복 점수를 주위에 많이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낮게 말하더라구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전문 기술직이라 거액 연봉을 받는 친구, 교사 친구... 다들 부럽다 하는 이들조차 아주 낮은, 낮아도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말해서 깜짝 놀랐단 거였다. 자주 만나는 친구가 심지어 30점이란 답을 하길래 P작가는 '내가 얘를 제대로 알고 있던 걸까?'라는 의문마저 들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까지 행복 점수가 몇 점이냐는 질문을 주위에 별로 던져본 적이 없다. 그래 봐야 자주 연락하는 서너 명 정도? 사실 이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만한 친구가 많이 떠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친한 사람에게 물어보기에는 뜬금없는 질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행복점수가 몇 점이냐는 질문을 할 상대를 떠올릴 때면 그가 몇 점으로 답할 것 같다는 예상이 뒤따르긴 한다. 요컨대 '당신의 행복점수는 몇 점입니까?'란 질문은 의문형인 동시에, 질문자가 답변자의 평소 모습이나 현 상태를 근거로 행복의 정도를 가늠하는 판단형 문장이기도 한 것이다.

  




솔직히 대외용으로는 8~90점이라고 말할 것 같은데요, P작가님이니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자면 제 행복 점수는 70점 정도인 것 같아요.


  이제 고백하자면 행복 점수에 대한 내 대답은 이러했다. 외부에 보이고 싶은 행복의 수준과, 스스로를 돌아볼 때 느껴지는 행복 점수의 괴리를 고백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P작가가 나와는 달리 행복 점수를 90점이라고 당당히 밝히자, 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P작가님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거나 몸이 아픈 상태라 해도 늘 그랬듯 90점을 매길 수 있을까요? 


  이때 내 머릿속 전광판엔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데는 저마다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나보다 20점 높은 그의 행복 점수에 질투라도 느꼈던 걸까,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작가 P가 불행을 덜 겪어봐서 이토록 당연한 행복을 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시니컬한 의문이 똬리 틀고 있던 것이다(어쩌면 이런 성향이 내 행복 점수를 30점 깎아먹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였다면 나는 그와의 이야기를 굳이 옮겨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P가 내게 들려준, 담담하면서도 진실된 90점의 비결을 공개한다.

살다 보면 당연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맞이하죠. 그건 상황에 따라 누구나 겪는 기분의 상태라 생각하고, 저 또한 그랬어요. 하지만 그런 변화가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기본적인 틀까지 바꾸진 못했어요. 언젠가 저는 '나는 왜 나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거든요. 결국 제가 찾은 답은 가족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고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해 주셨어요. 그 덕분에 저는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죠. 비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는 흔들려도 뿌리가 흔들리진 않잖아요. 저한테 행복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외부 조건들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처 : (아직은 자칭) 천재 작가 P의 그라폴리오

https://m-grafolio.naver.com/tkanfkdlryzh

* 내가 이 정도 했으면 P작가도 나를 위해 뭔가 해 주리란 기대를 갖진 않습니다. 이미 행복하니까요:)


  좋은 부모님과, 그들께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들. 그 안에 뿌리박힌 절대적인 행복감. 평소에 시답잖은 농담께나 던지는(물론 내가 더 많이 그러지만) 그의 모습이 갑자기 새로워 보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대화를 통해 나의 행복 점수마저 덩달아 높아진 느낌을 받았다. 90점까지는 아니더라도 80정도? 나 역시 누군가의 행복 점수가 50이나 60이라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행복 점수를 적어도 10점은 올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어졌다. 그 덕에 5점 더하여 내 행복 점수는 85점까지 오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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