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의 이유>와,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연결 짓기.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 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 정치인이나 농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 리베카 솔닛 : 미국의 저술가, 비평가, 역사가, 여권운동가
- 김영하, <여행의 이유> 中
생각으로 먹고살고 싶기에 와 닿은 구절이 아닌가 한다. '여행'의 이유에 대해선 따로 납득할 필요가 없을 만큼 생각해봐서 알겠는데, '방랑'의 이유에 대해선 스스로를 설득할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그 끝에 반드시 뭐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 기약 없는 방랑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어쩌면 끝없는 여정이야말로 진정한 방랑의 묘미일진대, 성급히 끝내려고 초조해하느라 방랑과 방황을 혼동하는 악순환에 빠졌던 것 같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
고 슬며시 우리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 : 프랑스의 소설가, 수필가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中
뒤이어 나는 예전에 읽고 더 감탄해 마지않던 <여행의 기술>의 구절을 떠올린다. 같은 장에서 알랭 드 보통은 파스칼의 <팡세>의 구절을 또 인용하는데, 이 역시 기가 막혔던 것이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이러한 구절들을 인용해 풀어내는 얘기인즉슨 이렇다. 사람들이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가 아닌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나는 김영하의 시선과 알랭 드 보통의 해석을 종합해 두 가지 결론을 낸다.
1. 생각으로 먹고살고자 한다면 방랑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말 것. 다만 여기서 방랑은 스스로와 타인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확실한 방랑일 것.
2. 나의 방랑과 여행이 비록 사막을 건너고 빙산과 밀림을 가로지르는 게 아닐 지라도 개의치 말 것. 그러한 여행을 한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하되, 방에 고요히 머물면서도 우주를 사유할 수 있는 내 여정을 보다 존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