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탄

산을 넘는 건, 한 사람을 넘는 것

몇 부 능선쯤일까

by 차돌


힘겹게 산을 넘을 때마다 힘겹게 한 사람을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을 넘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 그대로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아느라, 만나느라, 좋아하고 사랑하느라. 그리고 표정이 없어지다가, 멀어지다 놓느라...... 마치 산을 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 '나는 능선을 오르는 것이 한 사람을 넘는 것만 같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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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자주 다니진 않는다. 규칙적으로 아침 산을 찾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작정하고 오르면 대개 정상을 누리거나 계절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오는 편이다. 산에 오길 참 잘했다며 온 마음을 다해 등산하고 하산하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꼭 산을 찾듯이 한다. 감히 이병률 시인을 흉내 내느라 그러는 게 아니고 참말로 그렇다. 그리 성실하고 절제 있게 사람들과의 연을 당기고 놓지는 못한다. 다만 인연이 닿고 마음까지 통하는 사람에게는 되도록 정성을 기울이고, 그(녀)의 마음을 깊이 느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등산의 과정까지는 어찌어찌 사랑하겠는데, 내려오고 멀어지는 하산의 느낌만큼은 아직도 잘 못 견디겠다. 등산과 하산 모두를 즐기는 게 산을 사랑하는 일이라 한다면, 마찬가지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 모두에 능해야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일일 텐데. 나는 여전히 서툴고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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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으며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면 하나도 힘이 들지 않다.
한 사람의 무게 때문이다.


이어진 문단에서 이병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얼핏 생각하면 한 사람의 무게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힘들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하나도 힘이 들지 않다'라고 한다. 이는 산문 전체의 맥락을 놓고 보면 담담하게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앞서 그는 '누군가에게 산은 힘겨움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극복의 대상이다' 라고 서술한 것이다. 힘겹게 산을 넘어도 보고 극복하기도 했을 시인은 한 사람 두 사람 떠올리며 능선을 오르내리는 일에 어느덧 익숙해졌을 테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산을 넘는 일이, 사람을 넘는 일이 예전보다 덜 힘들게 느껴질 뿐인지도.


문득 궁금하다. 이병률 시인도 혹시 산 아닌 곳에서 온통 한 사람을 넘으려고 산을 떠올렸을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으리란 공감대가 생기면서도, 더 이상 내 기준으로 훌륭한 작가를 헤아리지 말자란 생각에 그의 다른 문장, 다른 단상으로 관심을 옮긴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설악산에는 올해 첫눈이 이미 내렸다고 한다. 날이 간혹 풀리는 서울의 지금과 달리 그곳은 춥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하산은 설악산 능선 어딘가에서 멈춘 듯 느껴진다. 강원도 산골이 너무 멀다면 언젠가 또 함께 했던 북한산 어디쯤을 나는 아직 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한 사람을 다 넘지 못하여 산도 못 넘나 보다. 주말에는 일 삼아라도 산을 찾아보리라 다짐하며 <혼자가 혼자에게>부터 마저 읽는다.


KakaoTalk_20191126_155246583.jpg 작년 겨울, 설악산 높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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