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와 도스토예프스키와 나
그는 항상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갈망이 강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서, 당시에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하도록 허용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하권 에필로그 中
가끔 내 생각이 무서웠던 적이 있다.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했을 때다. 안 맞는 친구 몇 쯤이야 멀리하면 그만이던 어릴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어서는 더욱 그랬다. 사회생활로 어떻게든 얽힌 안 맞는 사람들과는 멀리할 수 없는 관계의 거리만큼 미움도 가까웠다.
일상의 영역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시끄러우면 너네가 이사 가라며 악다구니 쓰던 인간이 하필 위층에 살면 잊을 수도, 멀리 할 수도 없어 아침저녁으로 미웠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미워진 이들을 무시하기에 내 신경은 예민했고, 이해하고 포용하기엔 이미 틀어진 감정이 용서치 않았다. 그들을 향해 별 생각이 다 들 때면 나는 괴롭고 무서웠다.
'별 생각'들이 만약 실현됐다면 이 글은 아마 옥중 수기가 됐으리라. 나 같은 이들이 품는 미움의 감정과 망상이 저마다의 괴로움에만 그칠 수 있는 건 도덕과 윤리와 법 덕분일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잠재적인 범죄까지 규제하는 세상이 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상상으로나마 마음껏 미워하고 죄짓고도 벌은 받지 않을 수 있다.(삿된 마음조차 죄라는 종교의 영역을 고려하기에는 영성이 부족합니다)
소설의 묘미야말로 이럴 때 발휘되는 게 아닌가 한다. '나만 이런 상상을 하나?' 혹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와 같은 의문에 괜찮노라 위안을 주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허구의 세계가 실제처럼 생생할수록 독자들은 작품에 빠져들며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할 수 있으니, 일탈과 범죄가 소설의 인기 소재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범죄'하면 떠오르는 소설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만큼 정직한 제목도 없을 것이다. 총 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작품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1부에서 이미 살인을 저지른다. 그가 생각하기에 세상에 해만 끼치는 존재인 전당포 노파를 없애는 일은 죄가 아니다. 아니, 죄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그는 애써 자신의 이성을 합리화한다. 탐욕스러운 노인 하나를 죽임으로써 자기 같은 가난한 지식인과 주변인이 돈을 나눠 갖는 건 옳은 일이란 생각을 이미 실행에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라스콜리니코프의 관념은 소설에 얼핏 등장하는 '초인 사상'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범죄가 분명하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을 이끄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에게 초월적 지위가 부여된다는 인식이야말로 인류사에 히틀러 같은 인물을 남기지 않았던가. 현대 사회의 도덕률과 법 기준으로도 그렇고, 작품이 쓰인 19세기 러시아에서도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명백한 범죄였다.
그렇다면 <죄와 벌>이 주인공의 살인을 단죄하며 정의를 논하는 작품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대문호로 평가받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역작답게 <죄와 벌>에는 인물들의 아슬아슬한 심리 묘사와 대화가 치밀하여 내용과 구성이 단선적이지 않다. 범죄 이후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고뇌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이 생생한 필치로 묘사돼 있는 덕분이다.
그는 항상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갈망이 강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서, 당시에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하도록 허용된 사람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의 구절로 돌아가 보자.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창조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내내 떠올렸다.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기로 유명했던 그였기에 피폐하고 병약한 주인공의 심리를 그토록 잘 묘사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에필로그의 회고를 옮겨 적으며 이게 실은 작가의 독백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다행히(?) 라스콜리니코프만큼 불운하거나 가난하지는 않다. 범죄를, 살인을 '실제로' 저지를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그를 향한 평가, 어쩌면 작가 본인의 회고일지도 모를 상상에 대한 참회는 마치 나를 향한 읊조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던, 그렇지 않을 땐 나 자신을 혐오하며 어떻게든 괴로워한 많은 시간들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무언가 더 큰 것을 원했고, 갈망 하나를 근거로 타인보다 많은 걸 허용받길 원하던 심리. <죄와 벌>은 너의 죄책감이 실은 거대한 자만의 다른 형태였을 뿐이었노라 일깨워 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