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탄

불편해지며 깨어있기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by 차돌


... 그렇다고 요즘 이슈인 힐링이나 치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구조적인 매트릭스에서 자신을 분리시킨 채 성급한 반성과 화해, 자기 정당성 확보의 글쓰기로 잠시 위안받고 산뜻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그 삶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조금씩 불편해지며 깨어있는 게 목표라면 목표였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31P.




x9788998614102.jpg


생업과 집필 사이의 갈등을 버티고 좋은 책을 쓴 은유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녀의 책에는 경험에서 우러난 내용들이 잘 담겨 있었다. 다년간 글쓰기 교실에서 강의해 온 그녀의 문장답게 편히 읽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마음에 쏙 든 운 좋은 케이스였다. 평소 같았으면 고르지 않았을 제목이었는데, 희한하게 끌려서 목차와 서문을 읽기 시작해 끝을 보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잠시 위안받고 산뜻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글쓰기에 필요 이상으로 만족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복귀할 일상이 온통 뒤흔들리는 경험이 잇따르자 비로소 글쓰기의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만약 생업이 목표라면 나의 글쓰기는 아주 느슨한 것일 테고,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고민할 이유는 없지 않나? 이러한 물음에 은유 작가의 서술이 명쾌하게 다가왔다. '조금씩 불편해지며 깨어있는'. 목표인 줄 몰랐던 목표를 마침내 발견했다.


computer-768696_1920.jpg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을 쓰기 어렵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만약 누군가 자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62P.




읽은 만큼 더 읽었을 무렵 다시 한번 감탄했다. 자기 검열과 편견을 뛰어넘는 글쓰기의 마음가짐을 이토록 명확하게 서술하다니! 보통 에세이에서 '이거 내 얘기잖아?' 라고 느낄 때는 저자의 에피소드가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경우다. 그런데 위에 발췌한 대목에서는 특별한 사례 없이도 작가의 표현에 감응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글을 쓰는 실제적 행위를 멈추진 않은 덕분일 거라 생각한다. 은유 작가의 내공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겠으나 어쨌든 나도 '자아의 환영' 같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짐작하는 것이다.


솔직한 작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앞다투어 온 지 오래다. 은유 작가의 말을 적용하자면 '자기감정에 집중한 글'들이라 좋은 글로 널리 인정받나 보다. 단, 이런 분위기라서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있다. 그건 바로 타인에게 비친 스스로를 의식한 글을 쓰면서 아닌 척 포장하는 거다. 인스타그램에 비유하자면 잔뜩 보정한 사진 혹은 극히 일부의 모습만 올려놓고 #일상 을 자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이든 사진이든 자아의 환영에 도취된 콘텐츠는 결국 외면받게 돼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중략)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95P. 김현 문학평론가의 말을 인용한 구절


마지막은 이 책의 저자가 아닌 그녀가 인용한 다른 이의 말을 옮겨 적는다. 위의 두 발췌문처럼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내용이 아님에도 이 문장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문학이 실은 인간에게 '유용하다'라며 흔한 해명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제시한 정의와 근거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유용하지 않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불편하기에 깨어있는 글쓰기의 목표가 다시금 떠올랐다.


글쓰기의 최전선까지는 다다르지 못해도 좋다. 설령 최후방이라 한들 그곳에서 글을 쓰는 한 나는 깨어있고 싶다.


letters-2111529_128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