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탄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다시 읽은 <상실의 시대>_2

by 차돌


자, 행운이 있기를. 여러 가지 일이 있겠지만 너도 상당히 고집스런 데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해 나가리라 믿어. 그런데 한 가지 충고해도 될까?
좋아요.
자기 자신에게는 동정하지 말아.


하고 그가 말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기억해 두겠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상실의 시대> 368P.
나가사와 선배와 와타나베의 대화 中




movie_image.jpg 영화 <상실의 시대> 스틸 컷


<상실의 시대>를 읽다가 위 대목에서 화들짝 놀랐다. 나가사와 이 녀석이 마치 나 들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와타나베에게 감정 이입을 한 탓도 있겠으나, 그전까지 등장인물들의 말이 그처럼 직접적으로 꽂힌 적은 없었다. 나가사와의 말은 당시의 내 상황을 너무나 잘 꼬집는 충고였던 것이다.


쿨내 진동하는 주인공 이상으로 쿨하다 못해 '쩌는' 인물이 바로 와타나베의 대학 선배 나가사와다. 작가(하루키)의 은근한 욕망이 투영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와타나베는 그를 존중한다. 외모, 집안, 능력 모든 게 완벽해 오히려 모든 게 허무한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넨 조언은 그래서 더 묵직했는지도 모른다.


두 인물의 관계라든지 대화의 맥락을 소개하자면 설명이 더 필요하겠지만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을 동정하지 말라는 한 사내의 조언과 그 근거(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가 너무나 명확하여 곱씹어 보고 싶을 뿐이다. 또한 나처럼 <상실의 시대>를 읽은 수많은 와타나베들이 나가사와의 충고에 뜨끔했을 거란 추측에 기대어 발췌한 문장이기도 하다.


나가사와의 말에는 목적어가 분명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말 것. 이는 자존감과 자존심도 구별 못한 채 타인에게 인색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람을 향한 충고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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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듯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쉽다. 전자는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자기 감정에만 취해 사랑을 고백하고 부풀리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동정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고 동정하는 일보다는 자신을 동정하며 위로를 구하기가 더 쉽다. 우리는 타인을 동정하거나 그러지 말아야 할 상황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스스로를 동정하는 태도에 곧잘 너그러워지곤 한다. 자기애와 동정심을 종종 혼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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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동정은 반드시 자기 연민으로 이어진다.

자기애는 자신에게 허용한 관대함을 타인을 향한 관대함으로 확장시킬 수 있지만 자기 연민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애는 관심의 대상을 타인으로 옮길 줄도 알지만 자기 연민은 오로지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만 보는 사람은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 동정이나 위로를 받지 못해 점점 더 외로워진다. 이 외로움은 결국 더 큰 자기 연민을 통해서가 아니면 위로받을 길이 없다.


그러면 대체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란 말은 왜일까?(나가사와의 말에 동의한다면)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은 위에서 말한 이유로 자기 연민에 사로잡힐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이는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스스로를 감싸며 진실로 뉘우치지 않기에 비열하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 이는 설령 잘한 일이 있더라도 자조적이고 만족할 줄 모르기에 비열하다. 요컨대 지나친 자기 연민은 지나친 자기애만큼이나 고집스럽고 독선적이기에 여러모로 비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열'이라는 단어가 너무 강하다 싶으면 '비겁', 그도 아니라면 '미성숙' 정도의 단어로 바꿔도 좋을 듯하다. 원작자 하루키가 어떤 단어를 사용해 그게 번역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단어 자체가 아니라 뉘앙스와 느낌이니까.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의 진창으로 되돌아갔다.


나가사와 선배와 악수를 하고 헤어진 뒤 와타나베가 마저 털어놓은 말이다. 여기서도 그는 나가사와의 세계는 '새로운' 세계라고 칭한 반면 자신의 세계는 '진창'이라 표현했다. 그 자신은 아주 담담하고 건조하게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줄 알지만 실은 자신을 낮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잘 아는 나가사와이기에 굳이 헤어지면서 '자신을 동정하지 말아'라는 충고를 덧붙였는지도.


실제로 나의 세계가 진창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은 것 같다. 진창마저 새로운 세계로 받아들일지, 새로운 세계마저 진창으로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렸다, 라는 교훈을 새겨본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짓이란 걸 기억해 두기로 한 나는 또 한 명의 와타나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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