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말고 빛무리요
마스크가 일상이 됐지만 여전히 불편할 때가 많다. 특히 안경을 끼면 입김 때문에 차오르는 성에가 그렇다. 시야가 흐려진다고 마스크를 벗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안경부터 벗으면 안경 다리에 마스크가 걸려 결국엔 안경이고 마스크고 다 벗어야 하는... 블라블라 불편블라.
그런데 오늘 밤길을 걷다가 안경에 낀 성에 때문에 묘한 광경을 봤다. 뿌예진 안경 너머로 밤거리 조명의 테두리들이 알록달록 빛무리를 이루는 거였다. 눈 앞이 흐려져서 불편하단 감정을 느끼기 전에 뭐랄까,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아름다워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주연 배우 송강호가 내뱉는 이 대사가 귓가를 맴돌았다. 실제로는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실은 구질구질하고 짜증나는 광경 앞에서 터져 나오는 역설의 명대사, '참...아름답다, 아름다워'. 동그란 빛무리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것도 잠시, 코로나 바이러스 명의 유래(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그 모습이 마치 태양 주위에 형성되는 가스층 코로나를 닮은)가 떠오르고 만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과 건강한 신체의 고마움을 전 국민이 심각히 공유하고 있는 요즈음. 그래서 난 뿌연 안경 너머의 형형색색 빛무리에 새삼 감탄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아쉬웠다. 마치 어수선한 뉴스를 접할 때처럼. 언제쯤이면 우리들의 우아한 세계는 진짜로 우아해질 수 있을는지. 진심으로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나아가 지인의 지인의 건강까지 챙기는 순수한 마음만이 예쁜 빛무리처럼 번져나갔으면 좋겠다. 우려를 가장한 분열과 갈등, 증오와 원망의 목소리들은 코로나19와 더불어 싹 사라졌으면.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