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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Apr 03. 2020

대체로 맞게 가고 있으니 걱정 마시길.

버스 창가에서 화들짝 놀랐다가 안심한 오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익숙한 목적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20분 남짓 가야 할 거리인데 탑승한 지는 기껏해야 5분쯤 지난 무렵이었다.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음악 사이의 무음을 틈타 창 밖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줄곧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마트폰 세상이 된 이후로 종종 겪는 현상의 하나다. 내릴 곳이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도무지 어딜 보고 있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어라- 거리가, 건물들이 낯설었다. 

자주 오가는 길이라 익숙해야만 하는데 그랬다. '약속 시간까지 빠듯한데 이걸 어쩌나, 무심코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탔구나, 아이고 이것 참 내 정신 좀 봐라.' 짧은 순간 스쳐가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며 쓴웃음이 나려 했다. 여기는 그럼 어디인가 싶어 내가 앉은 곳의 반대편 왼쪽 창가를 바라봤다. 익숙한 건물들이 하나 둘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늘 타던 버스를 맞게 타고 잘 가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버스를 타면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오른편, 그러니까 버스 진행 방향의 왼편 창가 빈자리에 앉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쪽 방향에는 노약자석을 제외하면 자리가 없었고, 자연스레 평소와 달리 반대편(오른편 창가)에 앉아서 가던 중이었다. 어느새 왼편 창가의 풍경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게 오른쪽 창가의 풍경이 새삼스러웠던 이유다.


  제법 자주 오가는 길이었는데도 그랬다. 바라보는 창가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인데 다른 버스를 탄 줄로 착각하고 화들짝 놀라버린 나. 어쩌면 버스 아닌 다른 곳들에서도 종종 그래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맞게 가고 있으니 조금은 더 여유를 갖고 안심하기로, 가끔은 방향을 바꿔 이쪽저쪽의 풍경 모두에 익숙해지기로 결심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내 바라본 오른편 창가 너머에는 새로운 꽃들이 많이도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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