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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May 09. 2020

낮보다 환한 나의 밤

나의 밤 생활 도전기 



  요즘의 난 어두운 밤에 활발해진다.

해가 중천에 뜨면 일어나 오후에 비로소 쌩쌩해지고, 늦은 새벽이 돼서야 잠자리에 드는 밤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해는 마시길. 유흥에 빠졌다거나 오징어 잡이 배를 타는 게 아니다. 밤이 오면 나는, 바텐더가 된다.





  밤 생활이 더욱 특별한 건 보통의 삶이 낮 위주이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이 각광받는 경쟁 사회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한낮을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는가(인간의 생체리듬 어쩌고 하는 연구 결과는 잘 모르겠다. 어디선 정해져 있다 하고 어디선 아니라 하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아침형 인간에 대한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었고, 밤은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으로만 인식했다. 늦은 새벽까지 잠 못 든다거나 아침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면 종종 괴로워했던 이유다.


  그러던 내가 요즘엔 저녁이 돼서야 가게(bar)를 열고 한밤중에 손님맞이로 분주하다가, 자정 무렵에 한숨을 돌리는 한편 심야 영업을 이어간다. 그렇게 새벽 두세 시까지 일하다가 가게를 닫아야 나의 하루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새벽에 잠들지 않던 적은 많았으나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였다. 당연한 듯 새벽 서너 시라야 씻고 잠을 청하는 요즘의 생활이야말로 진정한 밤 생활이라 할 만하다.





  바(bar)에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곤 한다. 

돌아서면 잊던 칵테일들을 이제 직접 만들고, 봐도 구별 못하던 위스키의 이름을 듣고 진열대에서 꺼내 글라스에 따른다. 이런 나름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어떤 손님은 신중하게 사진을 찍어 올리고, 또 어떤 손님은 거듭 감사하다며 술을 맛있게 삼킨다. 어스름하고도 밝은 조명 아래 펼쳐지는 이 같은 밤의 정경에 바텐더가 취하지 않고 배길 재간은 없다. 다양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엿보다 보면 때때로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물론 생각만). 


  늦은 밤 깨어있는 데 아무리 익숙해졌다 한들 낮과 다른 특별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어쨌든 낮은 낮이고 밤은 밤이니까- 한낮에 요란했던 기분조차 어둠과 함께 차분히 가라앉는 밤. 바(bar)의 문을 열고 조명을 켜며 나는 전보다 생생히 깨어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던 바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밤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 또한 영원할 리 없음을 나는 안다. 밤 생활에 한껏 빠져들며 도전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끝을 염두에 둔 채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고백하건대 나의 밤은 낮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낮에는 프리랜서 에디터로서 글을 짓는다. 주기적으로는 커머스 상품 에디팅을 하며 또 다른 밥벌이에 나서고, 고정적으로는 각종 에세이를 브런치에 연재하며 글쓰기를 놓지 않고자 한다. 간헐적으로는 영화사라든지 숙박 업체에서 의뢰해 온 원고를 작성할 때도 있다. 수입이 명확하든 그렇지 않든 좋아서 하는 일이고 모두가 글 짓는 작업이기에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어쨌든 분명한 지향점은 변변한 책을 내겠다는 작가로서의 꿈이다.


  낮에도 밤에도 글만 쓰고자 했을 땐 모자라던 시간이, 밤에 일을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넉넉해진 느낌이다. 일찍 자든 늦게 자든 일어나는 시간엔 그만큼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럴 바에 난 새벽을 나의 시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거였다. 요컨대 나는 밤 생활을 통해 밤의 어둠뿐 아니라 낮의 어둠까지도 밝혀오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글로 남길 계획이다. 

즐거웠던 밤 생활, 바에서의 기억들은 그리하여 허구의 언어가 아닌 체험의 언어로 생생히 기록되리라. 그 형식은 에세이든 소설이든 상관없다. 밤의 바텐더 생활에 점점 빠져들수록 내 글의 도수와 향은 깊고 진해질 거라 믿는다. 그렇게 마침내 낮의 어둠마저 완전히 걷어낸 뒤, 난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밤 생활을 마음껏 추억하리라. 나의 시작, 나의 도전은 이렇게 낮보다 환한 나의 밤과 함께 무르익어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체로 맞게 가고 있으니 걱정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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