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패기 VS 고집, 객기

영화 <다크 워터스> 리뷰

by 차돌


소신, 패기.
없는 것들이 자존심 지키자고 쓰는 단어.
이득이 없다면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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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에서 대기업 회장 장대희가 힘없는 청년 박새로이에게 한 말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박새로이의 소신과 패기는 장 회장의 독선 덕분에 돋보이는데, 이는 꼭 드라마의 상황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짙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이 더 환하듯, 악(惡)이 악할수록 선(善)의 가치는 빛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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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워터스>의 주인공 롭 빌럿(마크 러팔로 역)은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인 유능한 인재다. 그러나 그는 시골 출신인 데다 내세울 만한 학력도 없고, 이러한 점은 영화 초반 은근히 부각된다. 한국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학연과 지연이 없어 고생하는 검사 조승우가 떠오를 법한 지점이다. 부패한 권력은 그로 인해 핍박받았던 실력자의 응전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는 클리셰랄까. 하지만 이 영화, <다크 워터스>의 스토리는 권력층의 비리라든지 그에 맞서는 개인의 사투를 그려낸 허구가 아니다. 실화 기반의 영화다.


실존 인물인 롭 빌럿 변호사는 거대 화학 기업 듀폰사가 은폐하려 한 환경 비리에 맞서 20여 년 간 분투해 오고 있다. <다크 워터스>는 이러한 캐릭터의 행위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풍부한 편은 아니다. 잘 되면 '감동 스토리', 안 되면 '신파'에 그치는 드라마적인 요소는 최소화한 채 사건의 흐름에 집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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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이 듀폰 소송을 맡게 된 데에도 물론 드라마적인 계기는 있다. 할머니의 지인인 농장주 가족들이 듀폰사의 화학 폐기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잠시, <다크 워터스>는 변호사 개인(롭에게도 대형 로펌이라는 빽은 있으나, 듀폰에 비하면 초라할 지경이다)이 거대 기업에 맞서 사건을 파헤치는 다큐를 최소한의 영화적 장치로 담아낸 수작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웃의 일을 외면하면 내일은 그것이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비정한 현실들이 떠올랐다. 주로 국내의 사건들이었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은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실존 인물인 롭 빌럿이 궁금했고, 그의 투쟁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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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태원 클라쓰>로 돌아가 보자면, 나는 박새로이가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사나이라 더 응원한다. 그의 소신과 패기는 비록 '드라마틱'해서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일지언정 현실에서도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다크 워터스>를 보고 나서는 반대의 기분을 느꼈다. 실제 사건이었음에도 영화로 그려진 그의 집념은 너무나 꾸준하여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크 워터스>가 그저 허구의 드라마였다면 롭 빌럿의 소신과 패기가 오히려 더 명료하게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어떤 이들이 '고집' 혹은 '객기'라고 치부하는 가치들이 때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간단 사실을. 소신과 패기를 '이득' 따위의 기준으로 폄훼해선 안 된단 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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