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난 담백하고 싱그러운 이 영화

(故)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저 산 너머> 시사회 후기

by 차돌


어린 시절 동화 <오세암>의 아련한 느낌을 접한 분들이라면 (故) 정채봉 작가를 기억할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저 산 너머>는 그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10여 년 전 유명을 달리한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뤘다. 나는 이 영화에서 실제로 동화 오세암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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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수환이는 심성이 착하고 여린 아이다. 때는 일제 강점기,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가는 산골 마을 수환과 친구들의 삶을 영화는 예쁘게 그려낸다. 물론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수환과 그의 형 동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부님(강신일 역)의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모습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수환의 조부 김익현(송창의 역)과 그의 아내(이열음 역)가 등장하는 액자식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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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영화 초반부터 병마에 시달리는 수환의 아버지(안내상 역)를 대신해 식구들을 책임지는 어머니(이항나 역)의 고단한 삶이 영화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소 달구지를 끌고 남편과 아들을 인솔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떠오를 지경이었다.(하단 참조)


08.jpg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이중섭이 식구들과의 행복한 날을 꿈꾸며 일본에서 부친 편지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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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버지를 여의고,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슬하에서 금세 철이 들어버리는 꼬마 수환. 과연 그는 어떠한 계기로 신부의 길을 꿈꾸게 되었을까. 사실 이 영화는 일곱 살 수환의 이야기만을 다루기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의 신부로서의 삶을 직접 조명했다고 할 부분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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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말미에 관객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우리 시대의 어른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릴 거라 확신한다. 영화의 제목 <저 산 너머>가 왜 저 산 너머인지를 수려한 영상미와 담백한 스토리에 담은 이 영화. 자극적인 영화들이 넘치는 가운데 그마저도 관람하기 힘들었던 요즈음이라 더욱 귀하게 다가온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함께 영화를 본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는 그림 창작에 많은 영감을 받았노라 말했다. 나는 글 작가이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글로써 그려지는 수환과 어머니의 삶은 과연 어떠한지 가만히 떠올려 봤다. 아무래도 글쟁이는 글쟁이인지라,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제대로 알아보는 게 우선이겠다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그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저 산 너머>를 보게 될 관객이라면 대부분 그러할 것이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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