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과, 시작.

영화 <엔딩스 비기닝스> 시사회 리뷰

by 차돌


이번엔 이별 후 새로 다가온 사랑으로 갈등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오는 6월 24일 개봉을 앞둔 <엔딩스 비기닝스>는 <라이크 크레이지>로 제27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신작이자, <뉴니스>에 이어 선보이는 로맨스 3부작 영화의 마지막 이야기다.(스토리의 연관성은 없지만 할리우드의 로맨스 장인으로 불리는 도리머스 감독의 작품들이란 점에서 관련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출연 배우의 면면 또한 화려하다. <안녕, 헤이즐>에서 풋풋한 매력을 뽐낸 쉐일린 우들리, 어벤져스 시리즈의 윈터솔져로 유명한 세바스찬 스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그레이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제이미 도넌까지. 서로 다른 매력의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펼치는 로맨스는 이들의 이름값으로 시작 전부터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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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랜 연인과 이별한 뒤 슬픔에 잠긴 다프네(쉐일린 우들리 역)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남녀 구분은 뒤로 하고 나는 일단 다프네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하필 <라이크 크레이지>를 함께 봤던 여자 친구와 이별한 뒤로 멜로 영화는 부러 피하다가 마침내 <엔딩스 비기닝스>에 이르러 과거를 회상하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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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인적 경험에 빗대어 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감상'할 때면 보통 그러하겠지만 내 생각에 영화만큼 경험의 폭이 감상의 질(?)을 좌우하는 것도 없다. 정해진 시간 내에 펼쳐지는 집약된 스토리, 보편적인 데이트 장소로서의 영화관이 주는 특별한 공간감 등등. 영화는 때론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 이상의 여운이나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의 회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엔딩스 비기닝스>는 실의나 비탄, 혹은 낭만의 이야기로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프네는 지난 상처에 아파할 겨를 없이 서로 다른 매력의 프랭크와 잭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한다. 지난 시간에 얽매여 침잠해 있던 나로서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극의 스토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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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한 편이다(라고 생각한다). 제목 그대로다. Endings, Beginnings. 다프네가 이별해야만 했던 사연은 극이 진행되며 조금씩 드러나는 식이지만, 관객은 과거를 궁금해할 틈이 없다. 영화 속 '현재'의 로맨스가 아슬아슬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저돌적인 매력의 프랭크와 차분한 매력의 잭 사이에서 다프네는 고민하고 주저하기보다는 행동한다. 덕분에 영화는 빠르고 열정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덧붙이자면 다프네가 잭, 프랭크와 주고받는 메시지가 스크린에 크게 펼쳐지는 연출 방식은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영화 <서치> 이후로 모처럼 접하는 참신한 전달 방식이었다.




뻔한 교훈이 뻔하지만 깨달음을 주는 이유는 둘 중에 하나다.

누구나 잘 알아도 막상 실천은 어려운 깨달음이라, 또는 등잔 밑이 어둡듯 그 진부함으로 인해 정작 소홀히 여기기 쉬운 가치라서. <엔딩스 비기닝스>는 적어도 사랑의 영역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다프네의 상황이나 행동 모두에 공감할 수 있던 건 아니다(이 역시 남녀 차이를 떠나 한 개인의 관점에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하려는 감독의 의중을 느끼긴 했으나 선뜻 납득하기 힘든 지점도 있었다. 이는 아마도 <엔딩스 비기닝스>가 전형적인 '서구식 로맨스' 장르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 덕에 작품을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영화는 심각해지려고 보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보는 거니까- 라는 게 내 취향이라면 취향이다.


어쨌든 끝이 있으면, 시작은 반드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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