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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틀 제주 스쿠터 여행 #2

나 홀로 하루

by 차돌


이틀 동안 150cc 바이크로 240Km를 달렸다.


대여 업체에서 '많이 달리셨네요~'라고 했을 정도의 주행 거리였다. 특정 스팟에 머물기보다는 바람 쐬며 달리고 이동하는 데 초점을 둔 여행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첫날은 온전히 혼자 다녔고, 둘째 날은 친구들과 셋이 함께 다녔다. 제주 스쿠터 여행에 관한 정보는 이미 온라인에 많겠지만, 비교적 짧고 굵고 심플하게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대략의 정보나마 기록한다.


스크린샷 2022-04-12 오후 4.48.47.png 출처 : wishbeen 여행 지도/일정표

첫날의 이동 경로다. 주요 스팟 간 직선 코스라 실제 주행 경로와는 차이가 있다. 내륙을 가로지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안도로 위주로 마음 내키는 대로 다녔으니 실거리는 저보다 꽤 길었을 거다. 바이크 인수는 제주 시내 대여점에서 오전 10시에 했고, 서귀포 숙소 도착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바이크 이동 코스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쪽으로 출발해 하귀-애월 해안도로 라이딩

2. 이호테우, 곽지 해변 지나 한림에서 점심 식사

3. 내륙으로 접어들어 중문색달 해변까지 라이딩

4. 서귀포항 인근 숙소까지 이동 후 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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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잠은 잤고, 아침에 눈을 뜨니 전날의 시끄러웠던 외국인 녀석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주 차 버릴까 잠깐 생각했다가 4:1이라 도저히 답이 안 나오니 참았다. 우르르 깨어나 붐비기 전에 나 혼자 얼른 씻고 짐 챙겨서 방을 나왔다. 9시부터 제공되는 게하 1층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최근 에어비앤비 환불 규정이 유연해진 반면, 이를 호스트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점으로 게하 직원과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는데, 내 잘못도 결코 아니었기에 현명히 해결했다. 대신 처음에 좋은 마음먹고 남기려던 숙소 리뷰 및 안내는 접는다. 굳이 안 좋은 리뷰나 별점을 남기지도 않았다. 내 맴은 이 정도 선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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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cc 비본 바이크를 빌렸다. 올해까지 꼬박 9년째 매해 제주를 여행한 나로서도 제주도에서 스쿠터로 다니는 건 처음이라 설렜다. 예전에 내륙에서는 몇 차례 스쿠터 여행을 해 봤기에 운전은 익숙했다. 승차감이나 수납공간을 생각하면 좌석 뚜껑을 여는 뉴카빙, PCX 등의 모델이 편할 수 있겠으나 125cc 이하에서 최대한 바이크 느낌(?)을 내려거든 비본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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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내리 달렸다. 바이크로 제주 해안을 달리는 건 예상대로 너무 좋았다. 워낙 익숙한 곳들이라 편하게 이동하면서도 특별히 안전에 유의하며 도로 상황에 따라 액셀을 당기고 풀었다. 정해놓은 목적지는 없었다. 해안을 적당히 달리다 시간을 봐서 내륙을 질러 서귀포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근 몇 년은 제주 북부에 비해 서귀포를 잘 안 갔기 때문에 짧은 일정이나마 반드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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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곽지까지 쭉 달렸던 것 같다. 전화할 일이 있어 멈출 때까지 되도록 쉬지 않고 바다 구경을 하며 마음껏 바람을 쐤다. 날이 풀리기 전이었던지라 맞바람, 해안 바람이 찼다. 겹겹이 껴 입은 옷과 미리 준비한 장갑, 머플러 덕을 톡톡히 봤다. 오전만 해도 흐리던 날씨가 점점 맑아져서 풍경이 더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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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한림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검색하면 평이 좋게 나오는 맛집 '롱로드'였다. '먹보와 털보'에서 알게 된 스테이크 맛집을 너무 가고 싶었으나 거리도 멀고 예약도 불가하여 찾은 대안이었다. 함박을 더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우선할 선택지일 거라 여겨진다.




벚꽃길.png * 정지 상태에서 거치대에 휴대폰을 끼운 상태에서 안전하게 촬영


서귀포 중문색달 해변까지 내륙을 가로질러 쭉 달렸다. 바닷가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며 꽃구경도 했다. 제주는 이미 벚꽃이 한창이었다(그 무렵 서울은 아직 추운 시기였다). 요즘 서울에서 한창인 벚꽃을 볼 때면 난 여전히 제주가 떠오른다. 올해 봄의 시작은 자연스레 제주였기에 기분 좋은 일들이 더 생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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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몸이 차가워졌다. 중문 색달해변 인근의 큰 카페(위층에 넓은 피트니스 센터가 있어서 눈에 띄었다)에 들어가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시켰다. 노트북을 켜고 그날 묵을 숙소를 잡았다. 이번에도 가성비 좋을 만한 곳으로 정하되, 전날의 불편함을 또 겪기는 싫어서 개인실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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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왔다. 정방폭포 가는 길을 산책하며 근처에 뭐가 있나 검색했다. '왈종 미술관', 언제 한 번 가 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곳이라서 주저 없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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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종 미술관은 제주에서 30여 년 작품 활동을 해 온 이왈종 선생이 작업실을 포함한 공간으로 설립한 근사한 전시관이다. 서귀포 바다뷰를 지닌 데다 인근 산책로도 잘 돼 있어 명소로 꼽히는 곳. 몇 년 전 인근에서 너무 잘 구경했던 이중섭 미술관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들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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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전시실을 둘러본 뒤에는 옥상으로 올라가 탁 트인 전망과 실외 조형물도 구경할 수 있다. 제주 해변에 위치한 미술관만의 매력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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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그 유명한 '오는정 김밥'. 제주 이야기할 때마다 먹어보라고 추천한 친구가 있어서 예전부터 벼르던 맛집이다. 김밥이 워낙 유명해서 미리 예약을 해야만 테이크아웃이 가능하니 유의하시길. 유명세에 따른 반작용(?) 때문인지 그렇게까지 기다려서 먹을 정도가 아니란 리뷰들도 눈에 띄었는데, 뭐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이왕 그렇게까지 먹었으면 웬만하면 맛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난 정말 맛있게 먹었단 말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6시쯤 가서 예약했더니 7시에 오라길래 1시간은 천천히 인근 서귀포올레 시장 구경도 하고 더 좋았다. 참, 김밥집 바로 옆에 '꼬란'이라는 카페 겸 식당이 있는데 흑돼지 라면을 주문하면 오는정 김밥을 같이 먹도록 해준다. 최고의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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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엔 루프탑이 있어서 간단하게 맥주 한 캔을 했다. 오후 내 바이크를 타며 바람을 많이 쐬었더니 일정에 비해 나른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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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잘까 하다가 한 번 더 기운을 내서 1시간 정도 인근 산책을 했다. 밤의 새연교는 조명이 참 예뻤다. 인근엔 방파제와 항구가 있어 마치 여수 밤바다 같았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만의 생각을 돌아볼 시간이 많고, 대개는 현재의 풍경이 과거에 경험한 경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보면 그때 함께한 사람들이 떠오르고, 마침내 현재 함께하는 사람들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이처럼 과거로 거슬러 간 사유가 결국엔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홀로 여행하는 일의 매력이 아닐는지.


모처럼 혼자였던 제주에서의 꽉 찬 하루는 과거의 일주일치와도 같아 길지 않아도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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