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반 다르지 않게 느낄 때
무언가 해보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행위가 가져올 결과와 그 행위를 회피함으로써 가져오게 될 결과 사이의 차이를 찾아낼 수 없게 되고 만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코끼리의 소멸> 中
20대까지만 해도 내가 겪는 모든 일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실패라든지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 경험이라 해도 말이다. 무엇이든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마음을 이끌어 갈 힘과 의지는 충만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웬만한 경험들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만큼 무뎌진 일상에서 예전처럼 쉽게 교훈을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소설 속 문장처럼 '그 행위가 가져올 결과와 그 행위를 회피함으로써 가져오게 될 결과 사이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해 무언가 해보려던 생각을 접는 경우가 많아졌다.
마음의 힘과 의지가 약해진 걸까? 아니다. 나의 30대는 20대에 비해 파릇파릇하지 않을지언정 심신이 더 건강하며, 매일이 긍정적이진 않을지언정 내일에 대해 대체로 낙관적이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렇게 자부한다.
'회피'를 무조건 나쁘게 볼 일도 아닌 것 같다. "피하지 말고 부딪힐 것, 경험한 만큼 성장할 것" 이런 건 너무 진부한 청춘 예찬론 아닐까? 지난날을 돌아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경험이 참 많았다. 회피하면 남들이 비겁하게 볼까 봐, 나중에 후회할까 봐 무리하게 밀어붙이거나 억지로 한 일들에는 뒤탈이 따르기 일쑤였다.
억지로 하는 일을 줄이니까 스트레스도 덩달아 줄었다. 이왕이면 즐겁고 마음 내키는 일을 골라서 하다 보니 결과야 어떻든 후회도 줄었다. 무슨 일에서든 의미를 찾느라 체력을 소진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힘을 비축했더니 중요한 순간 온 힘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는 게 어른의 삶 아니냐고? 가만 보면 어떠한 '보상'을 위하지 않고서야 견디기만 하는 삶을 택할 이유가 없다. 금전적인 이득, 주위로부터의 인정, 성취에 대한 갈망... 이러한 보상들마저 얻든 못 얻든 별반 다르지 않게 느끼는 순간을 나는 '권태'가 아닌 어떤 '경지'의 과정으로 여기고 싶다.
이상, 썼든 안 썼든 결과의 차이는 없겠으나 내가 좋아 끄적이는 경지에서 비롯한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