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삶으로 관통하는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
오랜만이다. 소설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운 건. 넷플릭스 '다음화'의 늪에 빠져 새벽 늦게 잠드는 일이라면 모를까, 인쇄 활자에 그토록 몰입한 게 얼마만이던 지. 잘 만든 '이야기의 힘'을 새삼 실감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한창 흥행일 때 약간만 보다 중단했던 나는 근래에 소설책을 사서 단번에 읽었다. 드라마가 별로였단 얘기가 아니라 원작 소설 본연의 매력이 워낙 대단하다고 하고 싶다.
<파친코>에는 4대에 걸친 일가의 생애가 치열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한국-일본-미국이 얽힌 근현대 사회(주로 일본). 한국계 이민 1.5세대인 이민진 작가의 정체성과, 일본에 거주하며(그녀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과 결혼했다고 한다) 직접 경험하고 취재한 내용이 잘 녹아 있기에 서사의 밀도와 캐릭터의 입체성 모두 탁월하다. 구상에서 탈고에 이르기까지 장장 30여 년의 세월을 들인 작품답다.
이 소설을 요리에 비유해 보자면 셰프가 차린 미식이라기보다는 손맛 좋은 어머니가 뚝심과 인내로 담가 숙성한 장에 가깝다. 평범한 개인의 삶도 시대의 소용돌이를 견디며 특별해질 수 있단 이야기를 이보다 깊이 있고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나는 책을 읽다가 종종 펄벅의 <대지>를 떠올렸다. 혁명 이후 혼돈의 중국 땅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소작농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로, 작가에게 노벨문학상까지 안긴 명작 아니던가. 사람들은 작가 이민진을 제인 오스틴에 빗댄다던데, 감히 추측건대 작가 본인은 펄벅 여사에 비견되길 원치 않을까 싶다.
이야기는 부산 영도 앞바다의 작은 마을에서 선자가 태어나며 시작한다. 배경은 일제의 본격적인 탄압으로 민초들의 삶이 피폐해진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우리나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상을 조망할 수 있는 시대극이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작가 이민진의 필력은 그녀의 영어를 통해 가장 잘 느낄 수 있겠기에 원서와 번역서 모두를 구입했고, 먼저 원서를 들춰봤다. 첫 문장을 읽고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기로 하고 번역서를 편히 읽기 시작했다. 두 권으로 나뉜 국내 소설은 내가 보기에 번역이 훌륭히 이루어진 듯하다. 소설 내내 지속된 선자의 부산 사투리가 맛깔나게 읽혔다.
위에 옮긴 소설의 첫 문장이 소설의 주제라고 이민진 작가는 밝혔다. 이를 두고 '역사는 우리를 망쳐놨지만'으로 해석한 초판본과 달리 개정판에서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작은 표현의 차이만으로 뉘앙스가 상당히 달라지는데, 작가 본인은 두 번역 모두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어느 쪽이든지 간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 - 는 내용을 담기엔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다. 다다음날이 돼서야 2권을 읽느라 집중력이 떨어진 탓일까. 후반으로 치달으며 여러 갈래로 퍼진 인물들의 서사에서는 조급함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 4대에 걸친 대서사시를 늘어지지 않게 2권에 담아낸 사실만으로도 명작 소설임에 분명하나, 감상평을 낱낱이 말하자면 그렇단 이야기다.
엄마 선자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며 나를 울게도, 웃게도 한 소설 <파친코>. 어느덧(?) 아이 셋의 엄마가 된 나의 여동생과, 세 손주의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에게 강력히 일독을 권한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세 아이를 키우며 독서를 한다는 건 굉장한 사치란 사실을 느끼는 데는 반나절, 아니 두어 시간의 방문만으로도 충분함에 나는 책 반납을 종용할 생각이 없다. 엄마들은 무조건 위대하다.
어머니들의 고단했던 삶, 조상들의 비극적인 역사를 새삼 깨닫게 한 데 어떠한 다큐보다 사실적으로 다가온 소설 <파친코>. 드라마 시청에 앞서 책부터 재미있게 읽어보기를 주위에 권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