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나비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방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 더냐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이 노래는 잔나비의 최정훈 스스로가 꼽는 '제일 잘 쓴 곡' 1위라고 한다. 대중적으로 더 유명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2위인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밝힌 곡을 쓴 계기에 대해서는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을 때 느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담았다'라고.
누군가의 무덤덤한 눈빛을 마주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무관심이나 외면, 심하면 냉소와 자조까지도 담을 수 있는 눈빛이란 얼마나 매정하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 모두가 피해자일 리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무덤덤한 눈빛을 날리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른임을 깨닫는지도 모른다.
꿈과 책과 힘과 벽. 쉽지만은 않은 단어들의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노래를 듣다 보면 '참 잘 쓴 곡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라는 의문이 딱히 의문처럼 느껴지지 않고,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라는 비판은 딱히 비판처럼 들리지 않는다.
요컨대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소년과 어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심정을 나약하지도, 강하지도 않게 잔나비만의 감수성을 가득 담아 노래한 곡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어른이었을 나이이지만 빠르게 바뀌어 버린 시대에 진짜 어른들을 보며 여전히 흔들리고, 벌써 내려다 보이는 청춘들을 보며 아쉬워하는 심정을 절절하게 담았다- 는 게 내 해석이요, 공감이다.
꿈, 꿈은 계속 간직해야만 한다.
책, 책은 꾸준히 쓰이고 읽혀야 한다.
힘, 힘은 더 큰 힘 앞에 균형을 잃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벽, 벽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렇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여길 수 있다.
때로는 꿈보다 해몽일 수도, 아니면 꿈보다 나은 해몽일 수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만 주구장창 듣던 내가 <꿈과 책과 힘과 벽>을 몇 번이고 들으며 눈빛을 다잡는 걸 보면 확실히 제일 잘 쓰인 곡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