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설렘으로 차오르던 나의 숨소리와
머리 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
파도가 되어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선 너머에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목소리에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그러나'로 시작하는 첫 소절에 멈칫했다. 곡을 중간부터 재생한 건가 싶어 플레이 화면을 보니 처음이 맞다. 이윽고 읊조리는 아이유의 나직한 음성, 그리고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는 고음의 향연. 가곡인 듯 뮤지컬인 듯 웅장한 연주를 뚫고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역시 독보적이다. 아이유의 수많은 인기곡 중에서 비교적 최근 발표임에도 벌써 손꼽힐 정도의 명곡으로 소문난 이유가 있지 싶다.
<아이와 나의 바다>는 <밤편지>와 마찬가지로 아이유가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가 제휘가 음을 입힌 노래다. 아이유 본인이 밝히기를 1절은 자기의 20대 초반을, 2절은 중반, 3절은 후반을 의미하는 20대의 요약곡이라고. 언제나 자신의 지난날과 현재, 나이에 따른 성장통과 깨달음을 스토리텔링하는 그녀의 또 다른 자전적 노래인 셈이다.
아이유의 노래는 언제나 애틋하고 아련하다.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겠지만 내게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창 인기 있을 땐 사실 흘려듣곤 했는데, 지난날 사랑했던 이가 그녀를 굉장히 좋아해서 콘서트까지 따라갔던 추억이 있기 때문. 그때부터 난 라디오에서든 길을 걷다 흘러 나오든 아이유의 노래가 들리면 멈칫, 하는 습관이 생겼다.
언젠가 김이나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러나'로 노래를 시작한 데 대해 아이유가 직접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앞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너무 길어질 듯하여 생략한 대신 서사가 곡의 이전부터 이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선택한 접속사라고(나무위키 참조). 유명 작사가 김이나조차 감탄했다는데, 설명을 알고 다시 들으니 정말 탁월한 도입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쯤에서 감히 국민 가수의 음악을 내 개인사와 연결해 본다. 이 나이쯤 들어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이유가 워낙 성숙한 아티스트라서 남들보다 빠르게 느껴서 그렇지, 내가 30대를 돌아보는 감정이 그녀가 20대를 돌아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상의 많은 순간들에 1차적으로 느끼는 기분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내 '그러나' 하고 다른 면을 살펴보게 되는 점에서 그렇달까.
지난 인연과의 추억으로 인한 '멈칫'은 함께한 시간만큼의 진한 여운을 동반한다. 혼자였다가, 함께였다가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은 젊은 날을 관통한 의미 깊은 경험이었다. 아이유가 오로지 사랑만을 노래한 건 아니겠지만, 수많은 노래들에 공통적으로 깔린 정서가 자기 성찰과 더불어 젊은 날의 사랑이 짙게 밴 듯 느끼는 건 내 식대로의 해석일까.
어쨌든 내가 아이유의 감정에 이입을 잘하는 건 그녀가 항상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을 노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종 본인이 직접 쓴 곡들을 설명하다가 지난날 '자기혐오'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할 정도로 인간 아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며, 타인에게는 솔직한 것이다. 이는 온통 남 탓 세상 탓이 넘쳐나는 힙합씬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발라더의 감성이며, 내 성향과도 잘 맞는 지점이다. 때로는 힙합이 통쾌할 때가 있지만 결국에 선택하는 감성은 발라드적(?)인 자기 성찰이란 말이다.
다시 <아이와 나의 바다>로 돌아가 본다. 노래 끝에 아이유는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라 했고,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라고 했다. 20대 끝에 모든 걸 달관한냥 긍정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지칠지라도 예전과 달리 회복할 자신이 있다는 독백으로 들린다.
곡의 후반부터는 굉장한 고음이 이어지기 때문에 듣기 편하기만 한 곡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이 노랠 굳이 돌아본 이유는 가사의 메시지와 노래 전체의 분위기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역시 아이유'라는 감탄은 이제 진부하겠고, '그녀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정도의 감탄으로 칭송을 맺음하련다.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전주도 거의 없이 '그러나'로 훅 들어오는 아이유의 음성이 과연 섹시하다. 잘 살피지 않으면 누가 과연 그녀를 지난날 자기 자신을 진정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짐작하겠는가. 삶이 때때로 멈칫, 할지라도- 나 또한 더 이상 어둠에 눈 감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