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임을 드디어 온전히 느꼈던 숲과 초원에 오래도록 서서
# 여행 둘째 날, 맑은 제주
# 사려니숲길, 제주마 방목지
# 제주시 구시가지, 독립서점 Like it 과 기념품점 The Islander
# 삼양검은모래해변, 더츠커피
# 각재기국과 고기국수
비 갠 날의 청량함과 봄 햇살의 따스함이 잘 어우러진 아침이었다. 제주여행의 둘째 날, 도착이 그저께였음을 감안하면 엄밀히는 2박 3일째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제주 한 달 여행에 있어서는 시작에 불과함에 새삼 들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에는 숲을 산책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내륙으로 들어가 볼 계획이었다. 제주의 많은 숲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려니숲길로 향했다.
그동안의 제주 여행에서는 울창한 나무들에 감탄만 하며 차로 지나쳤던 사려니숲이었다. 2박 혹은 3박의 제주 여행에서 워낙에 갈 곳들이 많았기에 어쩐지 산림욕에 시간을 할애하기 아까웠던 게 사실이다. 제주여행 가이드북에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몽환적인 분위기의...'로 설명을 시작하고 있는데 해당 드라마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특별히 감흥도 없었을뿐더러 괜스레 사람만 북적이는 관광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금 안내를 살펴볼수록 사려니는 제주에서 꼭 가보면 좋을 숲길이 분명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위치라 방문을 미룰 이유는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사려니숲길 주차장'으로 갔다. 널찍한 공간에 사려니를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숲길 옆 1차로에 임시주차를 해 놓고 구경하느라 위험해 보였는데, 이로 인해 작년 무렵부터 인가 도로변 주차를 엄격히 단속한다고 했다.
정차 후, 트래킹을 위해 작은 백팩에 물병이며 셀카봉 등을 챙기고 있는 나를 향해 안내원 할아버지께서 다가오셨다.
"15분 버스 탈 거예요? 빨리 가요, 이번 차 못 타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해~"
무슨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며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를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버스 한 대가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 부릉거리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이럴 때는 자동차에게서도 인기척 비슷한 게 느껴진다. 정차를 위해 멈춰있는 것인지, 출발을 위해 시동을 켠 대기 중인지 차의 뒷모습만 보고도 느껴지는 인상 같은 게 있다. 어쨌든 빨리 타야겠다 싶어서 짐을 대충 정리하고 차 문을 잠근 뒤 버스로 뛰어갔다. 다행히 버스가 20미터쯤 나아가다 멈춰서 나를 마지막으로 태우고 출발했다.
버스 좌석에 앉아 숨을 고르며 검색을 해봤다. 알고 보니 사려니 숲길 입구는 주차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이 사이를 순환하는 셔틀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 중이었다. 사려니 숲길은 입출구가 같은 코스가 아니라 양 끝의 위치가 다른데, 다른 한쪽은 붉은오름 근처에 있는 입구로 여기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셔틀버스도 시기나 정책에 따라 정류장이 바뀔 수 있어 보였는데, 어쨌든 그날은 기다리지 않고 운 좋게 바로 이동할 수 있었으니 다음에만 미리 잘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넓은 숲을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따라 비자림로 방향에서 붉은오름 입구 방면으로 걸었다. 곧게 뻗은 길이 잘 닦여있었고 주위의 숲은 그야말로 울. 창. 했다. 비 오던 어제의 동백동산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선은 사람들이 많았다(성수기에 비하면 적은 수였지만). 날씨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역시 동백동산보다는 유명하고 넓게 조성된 관광지인지라 가족단위 혹은 부부, 커플 여행객들이 셔틀버스의 절반 가량을 채우고 입구에 내려서 함께 출발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누가 봐도 봄의 제주를 산책하는 여행객들의 옷차림으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다녔다.
비 오던 날 짙은 녹색으로 하늘을 덮고 있던 동백동산의 나무들과 달리 사려니 숲은 보다 투명한 연두의 나뭇잎들이 곧게 뻗은 산책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맑게 갠 날씨의 영향인지 숲의 고요함보다는 햇살의 화사함이 가득한 정경이었다. 주차장에서 급히 가방을 챙겨 나오느라 선크림을 미처 못 가져온 게 아쉬울 정도로 그늘 없는 산책로에 드는 볕은 따사로웠다. 한참 걷다가 셔틀버스 배차표를 살펴보니 되돌아가면 점심 전에는 이동할 수 있겠는데, 더 걷다가는 1시간 정도 늦어질 시각이었다.(점심 무렵에는 배차간격이 1시간인 타임이 하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려니는 다음에 또 와도 되므로, 발길을 돌려 들어왔던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셔틀을 탔다. 제주도인데, 며칠 후에 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유가 또 한 번 좋았다.
한라산 중산간을 향해 내륙으로 조금 더 차를 타고 들어갔다. 제주마 방목지를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제주에는 초원도 많고 목장도 많아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말이나 소를 볼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이런 잠깐의 만남이 아니라 넓은 초원에서 말들이 풀어져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고, '방목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제주마 방목지야말로 딱 내가 찾던 장소였다.
잘 닦여진 산간도로를 달려 고지대에 이르면 양 옆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풀과 나무가 푸르고 그 가운데 거뭇거뭇 희끗희끗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들이 바로 제주시에서 직접 관리하는 제주 종마들이다. 서울에서, 아니 내륙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탁 트인 풍경과 수많은 말들의 모습이 이국적이기까지 했다. 제주는 어느 곳에서든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 쉽지만 중산간 지대에서 맞는 바람은 그것대로 또 다른 느낌이었다. 파란 하늘에 더 가까운 한라산 자락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기분을 느끼며 말들을 보러 가까이 갔다.
가까이서 말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는데, 이보다 평화로운 풍경이 더해졌으니 그건 바로 어미와 새끼 말이 저마다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품종관리를 위해 암말들과 그 새끼들을 함께 잘 지내도록 방목하는 것인지, 작고 가녀린 어린 말들이 각자의 어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던 것이다. 수말들은 비교적 따로 떨어져 각자 풀을 뜯고 있던 데 반해 암말들은 이리저리 새끼를 쓸어주며 챙기는 모습이었다. 굉장히 가까이서 말들을 관찰할 수 있었기에, 암말인지 수말인지 쯤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말들을 바라보며 있었다. 나와 같은 시간에 전망대 쪽으로 구경 온 사람들은 진작에 돌아갔고, 그 후로도 서너 차례 정도는 커플, 가족 단위의 구경객들이 왔다 갔다 할 동안 나는 계속 비슷한 자리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사진도 찍었으나 잠시였고, 대체로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리 오래 머물렀던 것이다. 급히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에게서는 왠지 '와, 좋긴 한데 더 볼 건 없군. 빨리 다음 장소로 가자'와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사려니 숲길에서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하던 버스와 같았다. 몇몇은 사진만 몇 장 찍더니 휙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여유란 상대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한 달을 지낼 생각으로 제주에 머무르는 나로서는 언제까지고 제주마 방목지에 감탄하며 천천히 구경을 해도 됐지만, 길어야 3~4일 일정으로 여행 온 사람들로서는 그렇지 못할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서 더욱 눈에 띄었던 듯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진 자의 시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면 '나는 저들보다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보다는 '왜들 저렇게 서두를까, 여기 조금만 더 서 있어보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초원과 말의 풍경쯤은 허허벌판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길 수도 있었을 테다. 또 누군가는 뉴질랜드나 호주에 최근에 다녀온 참이라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따져서 계산하는 건 컴퓨터나 할 일이고, 무릇 사람의 정서란 당시의 정황이라든지 그 사람의 인식 범위에 달린 주관이 아니겠는가. 광활한 제주마 방목지에서 느꼈던 여유는 어쨌든 나 자신에게는 절대적으로 풍요롭고 좋았다는 말이다.
좋은 풍경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꼭 평소보다 배가 더 고파지는 것 같다. 그날도 역시 그러했다. 게다가 제주마 방목지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점심이 꽤 지난 시간이었기에, 나는 이왕이면 가이드북에서 봤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다. 제주 맛집이야 워낙 많지만 이동 경로라든지 그때그때의 식욕에 따라 미리 봐 뒀던 곳들 중에 고르거나 지역별 맛집을 새로 검색하는 식이었는데 마침 하나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각재기(전갱이)국으로 유명한 '돌하르방 식당'이라는 곳이었다. 각재기는 처음 들어본 음식 이름이었는데, 제주에서 워낙 유명한 집으로 소개가 돼 있어서 사람이 적을 평일 오후에 들르기 좋다고 여겨졌다. 제주마 방목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 위치해 있었다.
신기하게 한 번 먹어봤고 그 후로는 딱히 먹을 기회가 없었음에도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며 각재기국 특유의 국물 맛과 향이 떠오른다. 진하거나 특이해서라기 보다는, 처음 접한 제주의 각재기국은 내가 아는 한 다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맛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사장님이 직접 국을 끓여 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라서 기억에 더 잘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얼갈이가 듬뿍 들어가 생선 비린맛을 잡아줬고, 함께 나온 오징어 젓갈과 고등어조림이 맛깔난 덕분에 맑은 국물이 심심할 겨를도 없었다.
먹다가 손님이 나 혼자 있길래 알고 보니 식당의 중간 휴식시간이었다. 아주머님 몇 분은 채소며 그릇들을 정리하셨고, 다른 분들은 청소까지 하시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재료 주문 중이신지 전화기 너머로 식재료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맛있게 먹고 있다가 어쩐지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지만 미리 알았던 것도 아니고 먹다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힐끔 주위를 보고 있었는데, 한 아주머님이 그걸 눈치채셨나 보다.
"총각, 식당 닫을 시간은 아니니까 천천히 먹어요~"
그제야 반쯤 남은 각재기국을 호호 불어가며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다. 역시 맛도 맛이지만 식당에서의 작은 친절과 배려야 말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 비결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디 한 군데 더 들르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사려니숲과 제주마 방목지를 제대로 둘러보고 밥까지 배불리 먹어서 이미 만족스러운 하루 여행이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부려 바삐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식당을 선택하면서도 미리 염두에 둔 코스가 있어 그대로 움직였다. 제주 시내에 있는 독립서점과 소품샵을 구경하기로 했다.
내가 주로 참고하던 가이드북('요즘 제주', '제주 100배 즐기기')에 나온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내비게이션 검색을 하려 했는데 두 점포 모두 영문명이라 그런지 정확히 입력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주소를 입력해서 찾았는데, 장소가 시내 중심가였던지라 골목을 따라 주차를 하느라 약간 헤매야 했다. 결국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지도를 보며 걸어서 독립서점 'Like it'부터 찾아갔다. 멀지 않은 곳에 신시가지가 조성되기 전의 번화가로, 지금은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은 한산한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었다.
모처럼의 조용하고 작은 서점이었다. 얼핏 봤던 책인지 잡지에서 제주에 정착해 사업을 하는 젊은이들로 소개한 사람들 중 한 분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공간이었다. 책이 좋아서, 제주가 좋아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가지고 운영하는 가게라 했던지라 들른 김에 책 한 권을 살까 했는데 결국 구경만 하고 나왔다. 경험상 여행 초반부터 기념품이나 물건을 이것저것 사다 보면 나중에 예산 초과의 문제에 봉착하는 데다, 이미 서울에서 가지고 온 책들도 부피와 무게를 꽤 차지하다 보니 더는 서적에 대한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들렀을 때 한 권이라도 살 걸 그랬다. 이후에 희한하게도 그쪽으로는 갈 일이 없었고 솔직히 일삼아 들러서 살 만한 책도 없었기 때문에 그날이 독립서점에서의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바로 근처에 있는 작은 기념품, 소품샵인 'The Islander'를 구경했다. 흔해빠진 감귤 초콜릿 상자가 아닌 아기자기한 물품들이 많아서 눈길을 끌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못 샀다. 여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물건을 보여주는 열정을 보였음에도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정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약 일주일 뒤 그녀가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고, 그때 함께 다시 구경하기로 했는데 이곳 역시 재방문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더 잘 됐으면 싶은 상점들에서는 한 푼도 지출하지 않고 엉뚱한 대형 마트나 관광지에서 쉽게 돈을 쓰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마케팅의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두 군데 상점을 구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저녁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가까운 해변에서 석양도 구경할 겸, 어제오늘의 여행 일정을 점검하고자 카페에 두어 시간 머물기로 했다.
차로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자 금세 바닷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조개구이 한 번 먹으려면, 바닷가 일출 한 번 보려면 날을 잡아야 하는 서울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해변 접근성. 제주가 좋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어느덧 저물어 가는 햇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실눈을 뜨면 보이던 실루엣과 검은 해변. 해변은 실루엣이 아니었음에도 검은 이유는 그곳이 삼양검은모래 해변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아마도 지리적인 이유 말고는 없겠지만) 모래가 새까맣기에 '백사장' 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해수욕장인데, 예전에 잠깐 들렀던 기억이 있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변함없이 희한하긴 했다. 그런데 또 원래 바닷가 모래가 검었다고 하면 그런대로 어울려서 오히려 누런 모래가 이상했을, 그런 자연스러운 풍경이기도 했다.
해변이 잘 내려다 보이는 좋은 위치에 '더츠커피'라는 큰 카페가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때까지의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 담고 약간의 글도 썼다. 역시 돌이켜 보면 그렇게 시간 나는 대로 여행을 정리하며 눌러 담았던 덕분에 계속해서 다채로운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마음에 드는 곳들을 마음껏 둘러본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해변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제주에서의 일상이다.
제주공항을 오가는 비행기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커피잔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를 반복했더니 어느덧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감상도 감상이었지만 역시 때가 되니 배가 고파져서 카페를 나섰다.
제주에서의 첫 고기국수. 미룰 이유가 없었다. 역시 식사 시간을 비껴 있는 때였던지라, 제일 유명한 집을 찾아갔다. 제주 3대 국숫집 중의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으로 꼽히는 '자매국수' 식당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표를 받아야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그나마 사람이 적은 편이었던 지라 6번째로 들어가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작은 식당에서 나 혼자 테이블을 쓰기가 어쩐지 미안할 정도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원래 제주도 고기국수 스타일을 좋아하는 데다, 자매국수 식당의 국수는 기대답게 진하고 시원한 국물이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1인 상에 딱 맞게 깍두기와 김치, 양파 반찬이 나왔는데 정말 남김없이 다 먹었더니 속이 든든했다. 일본식 라면과 차슈 등은 그렇게 서울에서 장사가 잘 되는데, 왜 아직 제주 고기국수가 서울 식당가를 점령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제주여행 둘째 날부터 이미 내 여행의 대략적인 패턴은 정해져 있던 것 같다. 산책과 풍경으로 얻는 감탄과 여유, 그리고 이를 정리하거나 현실 세상과 접속하기 위해 찾은 해변의 카페. 여기에 보통 두 끼 정도를 해결한 그날그날의 맛집들. 아무리 계획된 여행이 아닌 자유로운 여행을 추구한다 해도 사람은 결국 저마다의 '패턴'에 따라 여행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를 '여행'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삶' 전체로 확장해 본다면, 남들의 패턴을 쫓느라 허덕이는 게 얼마나 낭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걸 찾고 이를 위해 움직인다면 그걸로 이미 여행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 나가는 행위의 연속일 테다. 이에 가만히 자기의 패턴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그걸 참고해서 여행지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야 말로 삶의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