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한 달간 나는 네 군데의 이비인후과를 다녔다. 청력 검사와 난청 검사를 받았고, 소염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으며, 그럼에도 증상이 심하면 대학 병원에 가 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일상에 큰 지장을 줄 정도의 소리가 아니라면 영양 섭취와 스트레스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소리가 과연 ‘일상에 큰 지장’일까? 원래부터가 완벽한 일상이 무너진 거였다면 아마도 큰 병원이나 한의원을 더 다녔으리라. 완벽한 일상을 되찾고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업무 시간을 피해 새로운 병원을 찾아다니고, 별다른 진전이 없는 진료를 받고, 실비보험 비용을 청구하는 모든 과정이 귀찮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병원에 다니는 동안만큼은 줄였던 술도 원래대로 마시게 되었다. 회식이 반가웠으며, 친구들과의 모임도 다시 잦아졌다. 술에 잔뜩 취해 떠들다 보면 이명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아도 좋았다. 다음날 아침 숙취와 두통에 시달리다 보면 멍한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지만 밤이 오면 나는 다시 술을 찾았다. 내가 멈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너 무슨 일 있냐?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안 하고 술만 계속 마시네?”
“야야, 말도 마라. 얘 지난번에도 엄청 취했잖아. 술꾼이야 술꾼.”
그날도 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시끄러운 술집에서도 귓가에 찌르르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친구들이 나를 두고 말했다.
“너네 항상 시끄러운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나 그러냐.”
취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뱉은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뭐라는 거야, 무슨 느낌?”
“얘 또 취했나 보다. 아니면 지금 우리가 시끄럽다는 얘기인가?”
녀석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나는 오늘만큼은 숨기지 않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곧이어 입을 열었다.
“너네 혹시 이명이 뭔지 알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낼때의 주위 반응이 궁금했다.
“갑자기 이명? 들어는 봤지. 그거 뭐 귀에서 소리 나는 증상 아니야?”
친구 재영이 말했다.
“아네? 내가 그 이명에 시달리고 있단 말이야 요즘에. 재영이 넌 어디에서 들었냐?”
“어디서 들었더라… 잘 모르겠는데? 그냥 알고 있었어.”
“그게 뭐야, 귀에서 왜 소리가 나?”
“그러게. 갑자기 얘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보청기 같은 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야야, 술이나 먹자. 안주 뭐 더 시킬까?”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었다. 친구들은 별 이야길 다 한다는 식으로 한두 마디씩 보태더니 이내 술자리의 그렇고 그런 대화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입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전날 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옷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속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머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고 귓가는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처럼 요란했다. 양치를 하다가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을 때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뭘까? 아무리 되뇌어도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귀 안을 맴도는 소리의 일부만이라도 밖으로 쏟아낼 수 있다면, 아니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제대로 위로받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이명이 고독을 삼키며 자란다는 생각은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도 소리의 실체는커녕 고통의 무게를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소리는 점점 증폭되는 듯했다.
나는 그때 J의 이명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는 지독히도 외로웠을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