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그럴까
“사실 요즘 고민이 하나 있어. 그날도 그것 때문에 술을 마시다가 음악을 듣느라 이어폰을 꽂았던 거야. 정말이야, 잠든 당신을 깨우고 싶진 않았다구.”
“고민? 무슨 고민인데?”
“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야. 혼자 조용히 있으면 되게 신경이 쓰이거든. 차라리 다른 소음이 들려오는 거면 모르겠는데, 귀 안에서 소리가 나니까 도무지 뭘 해도 집중이 안 돼.”
이명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건 처음이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말로 표현했을 때 고민의 실체는 더욱 명확해지는 듯했다. 이윽고 나는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날은 유난히 두통이 심했어. 술 한 잔만 하고 잘랬는데 귀 안이 너무 시끄럽더라구. 그래서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지. 한밤중에 스피커를 틀 순 없잖아. 당신한테 시위하고 그러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단 말이야.”
잠자코 듣는 아내를 보며 내가 말을 이었다.
“귀에서 대체 무슨 소리가 난다는 거야?”
이윽고 그녀가 물었다. 의혹이 해소되었다기보다는 새로운 의혹을 품은 얼굴이었다.
“파도치는 소리 같은 게 들릴 때도 있고, 신호음 비슷한 소리가 날 때도 있어.”
“왜 그럴까. 어떤 소리일지 모르겠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J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아내가 보이는 반응은 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보인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 술을 너무 자주 마셔서 그런 게 아닐까?”
그녀가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나 역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여 반쯤 찬 소주잔을 응시했다. 더는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 술은 남기는 게 좋겠네.”
“마음대로 해.”
“다 먹었으면 우리 일어날까?”
아내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외로워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녀의 이해를 바라고 있는 건지, 그녀가 나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번에 나는 그녀의 코트를 집어 주는 대신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점원에게 신용카드를 내밀며 돌아보니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는 내가 벗어 둔 점퍼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나는 점퍼 한쪽에 팔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영수증을 구겨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식당 문을 나서자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살짝 돌던 취기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귀에서는 변함없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시끄럽다는 느낌보다는 외.롭.다. 는 생각만 자꾸 드는 거였다.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외롭다는 건 몹시 슬픈 일이었다.
아내와 난 집까지 말없이 걸었다. 나란히도, 앞뒤로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비스듬한 간격으로, 둘 다 앞만 보며 눈치껏 걸었다. 내가 약간은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발걸음을 맞추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내가 따라오는 내 발걸음을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건 아내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나는 또 한 번 식탁에 홀로 앉아 이어폰을 꽂은 채 술을 마시다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