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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Sep 15. 2017

제주 한달살기, Day4 : 제주의 카페

송당리 풍림다방과 월정리 카페 LOWA에서 보낸 여행 중의 휴식 

# 여행 넷째 날, 제주 카페
# 송당리 풍림다방
# 월정리 해변, 카페 LOWA




3일을 꼬박 돌아다니며 제주에 적응하다 보니 애초에 매일 정리하려던 여행기록이 밀려 있었다. 글은 둘째치고 사진이 휴대폰에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지라 백업과 분류가 필요했다. 새로운 여행지를 추가하기보다는 한 차례 쉼표를 찍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숙소인 선흘리에서 차로 20분 정도만 가면 송당리 한적한 마을 안에 풍림다방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바로는 제주 3대 카페 중의 하나로, 크림과 커피가 어우러져 달달한 맛의 '브레붸' 가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가게는 오전 10시 반에 오픈이라 미리 도착한 나는 잠시 기다려야 했다. 평일 오전임에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제주 돌담 위에 놓인 빠알간 돌에 작은 글씨로 '풍림다방' 이 적혀 있었고 작은 입구가 잘 들여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에 감춰져 있었다. 다행히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브라운 계열의 나무 인테리어로 따뜻하고 아늑했다.



주로 2~4인 단위의 손님들이 테이블 좌석을 기다리느라 줄이 끊이지 않았는데, 나는 창가의 외딴 자리에 앉은 덕분에 별로 눈치 보지 않고 머물 수 있었다. 블라인드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대기 손님들이 있어서 살짝 어수선 하기는 했지만 역시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혼자 여행하기 불편하므로 적당히 신경을 차단했다. 달달한 음료가 당기지는 않아서 시원한 더치커피를 주문했다.


여행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사진은 금세 백업할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의 줄기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더치커피가 밍밍해질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서 노트북에 집중하는 사이 많은 손님이 오고 갔다. 정오가 다 되자 점원 한 분이 오전 영업시간을 종료한다며, 죄송하지만 자리를 비워주셔야 한다고 했다. 줄 서서 들어온 카페에서 브레이크 타임까지 맞이하고 보니 얼핏 팍팍해 보일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런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비단 점원의 상냥한 태도 덕분만은 아니었다. 작은 가게 몇 개만 있는 조용한 송당리 마을에서는 붐비는 카페라 해도 여유를 잃지 않을 정도의 편안함이 있던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카페라 할지라도 어딘지 모르게 눈치가 보이고 각박한 서울의 카페들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당시에 4명가량이 있던 풍림다방의 직원 모두가 휴식 시간에 가게를 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점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여 판매를 멈추지 않고 카페 영업을 할 텐데, 풍림다방의 브레이크 타임은 그야말로 1시간 동안 카페가 완전히 멈추는 시간이었다. 매일이 그러한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만약 카페를 운영한다면 비슷하게 완벽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타의에 의해 카페를 나서고 보니 약간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카페는 아늑하고 친절했으며 브레이크 타임은 존중받을만했으므로. 단지 여행자로서 제주 한가운데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연속성을 갖고 다른 카페에 더 머물기로 했다.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 나가는 삶, 여행은 이러한 가운데서도 가장 자발적인 내부 동기로 시간을 채워가는 행위일 것이며 내 여행의 동기는 다름 아닌 사진과 글로 완성할 여행기였으므로.  

 

월정리의 해변 카페들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왔던 곳을 거슬러 올라 제주 동북부 해안이었다. 가장 유명한 카페부터 가기로 했다. 다만 그전에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월정리 인근에 위치한 한모살 식당에 갔다. 1인분 정식이 정갈하게 나오는 곳이었다. 문어와 고기 양념이 맛깔나 보이는 뭉게비빔밥 정식으로 주문했다. 반찬도 매우 깔끔하게 담겨 나왔다. 생긴 지 오래지 않았는지 내부 인테리어도 굉장히 깨끗했다.



무엇보다 그 식당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사장님이 가게를 차린 사연 때문이다. 메뉴판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그대로 그릇에 담았습니다'라는 내용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러한 감성은 이미 제주 올래 소주 광고에도 담겨 식당 한 켠 포스터에서 볼 수 있었다. "이녁은 바당이 되수다. 이녁은 어멍이난예" 는 제주 방언이다. "당신은 바다가 됐어요. 당신은 어머니이니까요" 라는 뜻이라 한다. 


사연을 알고 나니 더 따뜻한 음식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감성적인 식당 분위기에 밥맛까지 좋아서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실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사연이지만, 제주 해녀인 어머니의 손맛을 내세우는 식당은 결코 흔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표현하는 식당. 오래도록 그 정성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을 나서며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밥은 잘 먹고 여행하냐고 물으시길래 방금 전에도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엄마나 잘 좀 챙겨 드시라고 내뱉었다. 괜히 미안했다.





'월정리 LOWA' 카페는 2층 전체가 바다를 바라보며 앉거나 누울 수 있는 자리로 마련돼 있다. 주변에도 해변을 볼 수 있는 카페가 많지만 이곳이야말로 월정리 카페의 대표 격으로 책과 인터넷에 많이 소개돼 있다. 햇볕을 가려주는 천막도 있어서 망설임 없이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이 약간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라 바람막이를 걸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세화 해변의 카페공작소에서 산 제주 섬 모양의 종이 안에 월정리 푸른 바다를 담아봤다. 역시 제주 바다는 지역별로 저마다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맞닿은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날씨에 따라, 지역에 따라 수많은 푸르름을 간직한 제주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사무쳤다. 남은 여행 날짜를 세어봤다. 너무 기뻤다.


2층 테이블은 노트북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셀카봉으로 사진도 좀 찍고 가져온 책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전망이 좋아서 뭘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틈엔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누군가의 여행 사진에 졸고 있는 한 남자로 찍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쳤다가, 몇 번이고 다시 잠들었다.



시끌벅적한 음성과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완전히 깼다. 바닷가에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로 잠시 모여 단체 사진을 찍다가, 저마다 흩어져서 쫓고 쫓기기도 하며 꺄르륵 거리는 모습들이 참 예뻤다.


그날의 인터넷 포털을 달구고 있던 소식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기간제 교사 분들의 순직을 인정한 새 정부의 방침에 관한 기사였다. 그날은 스승의 날이었다. 여행 중에 웬만하면 스마트폰 확인을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주요한 인터넷 소식까지 외면하기는 힘들었다. 늦게나마 다행인 소식이면서도 다시금 가슴 아프고 저린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월정리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2014년의 비극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들과 닮았을 해맑은 학생들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슬픔과 애도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알게 모르게 여독이 쌓여있던 것 같다. 활동적이고 쾌활한 기분이 잦아들고 한없이 감상에 빠져버린 시간이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다시금 스마트폰으로 관련기사와 댓글들을 보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까지 했던 기억이다. 개인과 사회,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도 관련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결국 더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결론을 짓고 잡념을 바다에 던졌다. 내가 저 바닷가의 예쁜 학생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과 감정들은 '공감'에 의한 '연대의식'에 기반한다고. 적어도 저들은, 저와 비슷하게 어디서든 즐겁게 자라나고 있을 학생들에게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담아서.

 


 


카페 1층에 다시 자리를 잡고 오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카페 두 군데를 오간 시간만으로 훌쩍 지난 하루였다. 월정리의 사람 많은 해변을 벗어나 한적한 해안도로에 차를 대고 석양을 바라보며 내일의 일정을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중국인 여대생 3명을 게스트 하우스에 바래다준 일도 있었다. 제법 쌀쌀해서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였는데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길을 찾고 있기에 내가 지도를 찾아줬다. 내가 갈 길에서 크게 멀지 않아서 직접 차로 데려다주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모닝 한 대가 처음으로 꽉 찼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는 중국인들이라고 했다. 제법 한국어를 잘했고 별다른 의심 없이 한국인 남자 여행자의 호의를 고마워했다. 날이 날이었나 보다. 고등학생들의 순수함에 빠졌다가, 마지막에는 중국인 대학생들의 지도를 찾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꼭 여대생이라 그랬던 건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남자 대학생 세 명이었다면 차에 선뜻 태우기 쉽지 않았을 건 분명하다.


아무튼 여행자로서 다른 여행자들을 도와주고 숙소에 돌아오니 뿌듯했다. 앞서 여러 생각들로 적잖이 피곤했던 상태였는데 덕분에 기분 좋게 또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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