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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Sep 22. 2017

제주 한달살기, Day6 : 마라도의 롤링 스톤즈

프랑스 친구 Pierre 와 함께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데굴데굴

# 프랑스 친구 Pierre 와의 동행
# 대한민국 최남단 섬, 마라도
# 프랑스식 감자 그라탕, Gratin Dauphinois in french  




제주에 도착한 지 어느덧 일주일째였다. 마라도에 가 보기로 했다. 하나의 으로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보다 더 남쪽에 있는 국토 최남단의 섬. 한 달이나 제주에 머물면서 하루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마라도가 한적하고 작은 섬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비수기 평일의 제주에서도 어렵지 않게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고요함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예상과는 조금 다른 마라도 방문이었다. 숙소에서 친구가 된 프랑스인 Pierre 와의 동행은, 내 여행을 단지 혼자만의 시간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경험으로 채워준 만남들의 첫 번째 시작이었다.




1. Pierre 에 대한 기억



Pierre는 20대의 중후반의 프랑스인으로, *카우치 서핑으로 알게 된 한국인 친구를 통해 수도권을 며칠 여행하다가 무작정 제주도로 온 여행자였다. 내가 머물던 숙소의 호스트 분은 나를 최초의 한 달 여행객으로 맞이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카우치 서퍼로 Pierre를 초청한 덕분에 우리 둘은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연의 일치 치고는 감사한 인연이다. 내가 훌쩍 한 달을 여행했던 그 시기에 숙소의 호스트 분 역시 무언가에 끌리듯 자신의 하우스를 여러 여행객과 손님에게 개방했던 것이다.


숙소는 제주공항에서 제법 거리가 있던 데다, 그나마 버스로 도착할 수 있는 함덕에서도 십여분 이상을 차로 들어가야 하는 위치였다. 외국인인 Pierre 로서는 도착 날 고생 고생해서 간신히 함덕에 내렸고, 나는 호스트 분의 부탁을 받아 그를 내 차에 태워서 숙소로 돌아왔다. 초면부터 우리는 같은 객(客)으로서 서로 반가운 입장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 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여행 왔다는 그에게서 나는 더욱 친밀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자폐증 아이들을 돌보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람은 있었으나 너무나 힘이 들어서 또 다른 일을 꿈꾸는 중이라고 했다. 나 역시 어쩌면 퇴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결단을 위해 휴직을 선택하고 한 달 여행을 온 것이라고 하자 Pierre는 좋은 일이라며, 더욱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휴직을 얘기하면, 계획은? 대안은? 돈벌이는? 따위를 묻거나 말하지 않아도 그러한 생각이 담긴 눈빛으로 걱정을 보내던 반응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알고는 있다. 관여도가 낮은 이방인에게서 얻는 위안이 때로는 친밀한 사람들의 걱정에 비해 오히려 편하고 힘이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4~5일 간을 숙소에서 Pierre와 지내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눈 바로는, 단지 그가 낯선 외국인이라서 내가 속내를 더 털어놓거나 정서적인 교류를 나눈 건 아니었다. 그는 심신이 매우 건강한 여행자였고 그래서 나는 그를 존중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로 내게 마음을 열었던 것이라면, 그건 내게서 건강함을 확인했거나 건강할 것이 기대되는 어떤 가능성이라도 보았기 때문이리라.


* 카우치 서핑

소파(couch)를 찾아다닌다(surfing)는 의미로, 호스트가 금전적인 대가 없이 여행자에게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는 문화이자 웹 사이트를 지칭한다. 에어비앤비가 금전을 매개로 공간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카우치 서핑은 게스트가 호스트에게 일종의 '문화 교류'를 제안하여 서로의 신뢰를 기반으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서구권에서는 이미 활발한 여행 방법중의 하나다.




2. 첫 동행, 마라도

      

알아보니 제주에서 마라도에 가는 선착장은 모슬포항송악산 인근의 두 군데였다. 그중 송악산의 마라도 가는 여객선은 출항 발권과 함께 회항 시각도 정해야 한다는 정보를 봤던 터라, 비교적 시간 선택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나는 모슬포항을 택했다. 사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오전에 출항하는 배편이 이미 매진인 줄도 모른 채 숙소에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모슬포항에 여유롭게 도착했다. 어쩔 수 없이 오후 두 시가 다 되어 출발하는 배의 티켓을 샀고, 마지막 회항 시각은 세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배로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지도 않고 무작정 발권을 했다. Pierre 와의 첫 동행이 무척 신났던 데다, 이것저것 따지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만약에 내가 수도권 부근에서 Pierre를 알게 되어 함께 여행했다면, 여행 정보의 부족으로 시간에 쫓기는 일에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주 여행 당시에 나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이방인'처럼 여행에 임했고, 이에 무작정 나를 따라온 다른 이방인에 대해서 의무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실제로 Pierre는 제주에 대해서 더 알아볼 생각도 없었고,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을 통한 정보와 인연에 의지해 오로지 재미있어 보이는 선택으로 다니는 자유로운 여행자였다. 출항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인근의 카페를 찾아 둘이서 각자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노트북을 켜고 그때까지 정리해 놓은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했고 Pierre는 옆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SNS를 하며 제주도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채팅도 하고 내가 건넨 여행책을 읽기도 했다는 거다. 그때까지는 우리 둘이 서로 얘기를 나눈 시간도 별로 없었고 내 영어가 완벽하다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그게 편했다.



제주 모슬포항에서 마라도까지는 배로 2~30분 정도 걸렸다. 대개의 대형 여객선이 그러하듯 1,2층 선실의 내부에 앉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구경할 수도 있는 구조였다. 활발한 Pierre와 신난 나는 당연히 밖에서 망망대해를 구경하며 같이, 따로 사진을 찍으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잠시 선실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는데, 아침부터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터라 둘 다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마라도에 도착하면 짜장면부터 먹어야 할 판이었다. 



제주도가 멀어져 간 지 오래지 않아, 마라도가 저 멀리 덩그러니 보였다. 섬에서 출발했는데 또 섬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자못 신선한 기분이었다. 제주에 비한다면 마라도는 정말 작은 섬이었다. 사실 말이 섬이지 제주에 있으면서는 단번에 이곳이 섬이라고 할 만큼 외떨어진 느낌도 없었을뿐더러, 다니면 다닐수록 하나의 대륙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요컨대 제주는 내륙의 입장에서야 큰 섬이기는 하지만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은 어떤 고립이라든지 부족함 없이 하나의 큰 지역일 뿐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배를 타고 이동하고 보니 비로소 제주가 섬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 마라도였다.

  


같은 배를 타고 내린 사람들 외에는 먼저 도착한 이들의 인적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마라도였다. 섬의 반대편이 바로 보일만큼의 평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은 섬이라는 건 내리자마자 느껴질 정도였다. Pierre와 나는 짜장면집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이 반찬인 데다, 해물 약간과 톳나물이 들어간 마라도 특유의 짜장면은 매우 맛있었다. 짜장면은 짜장면일 뿐이라는 세간의 평도 있기 때문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짜장면을 처음 먹어본다는 Pierre도 다행히 입맛에 맞는다고 했다. 다만 허겁지겁 먹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와 나의 문화적 차이랄까 같은 상황에서의 다른 태도를 느꼈다. 음식을 그리 빠르게 먹는 편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Pierre는 짜장면을 굉장히 천천히 먹었다. 위가 신호를 받아서 소화를 잘할 수 있도록 천천히 먹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그였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배가 고프다고 후루룩 접시를 비운 입장에서는 어쩐지 프랑스인 앞에 한국인의 빨리빨리 습관을 보인 것 같아 괜히 켕겼다.


하지만 웬걸, 식당을 나서며 우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배로 마라도까지 오느라 소요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회항선 탑승까지 비교적 여유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배에서 30분을 보내고 또 식사까지 하고 보니 이미 마라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아뿔싸, 그제서야 Pierre 도 밥을 먹을 때와는 달리 나보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 아무리 프랑스인이라도 기껏 한국의 최남단 섬까지 여행 왔는데 한 바퀴 둘러보지도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던 것이다.



대한민국 최남단비를 찾아 급히 인증샷 하나를 남겼고, 거의 뛰다시피 해서 마라도를 한 바퀴 돌았다. 다행히 섬이 워낙에 작아서 30분도 안 되어 주위를 다 돌고 멀리 선착장이 다시 보이자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좀 더 여유롭게 마라도를 느끼려던 원래의 계획과는 많이 달랐으나, 여행은 여행이었다. 생각한 대로, 기대한 대로 모든 것이 흐르지 않는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를 지니지 않고서는 여행이 아닌 관광에만 그치고 말 터였다. Pierre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 순간에 이미 훗날 두고두고 기억에 남으리라 여겼을 만큼 흥미로웠다.



숨을 고르며 Pierre가 내게 재밌는 제안을 했다. 'rolling'을 해 보자는 거였다. 평평한 초원이 적당한 경사로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래 뭐 푹신한 잔디 위니까 옆으로 마음껏 구를 수 있겠네 싶었다. 녀석은 자기가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며 입고 있던 후드 집업마저 벗어던지고 나섰다. 날렵하게 앞으로 몇 바퀴 돌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뒤로도 구르는 거였다. 별 수 있겠나, 나도 곧바로 데굴데굴 앞구르기를 했다. 뻣뻣한 몸이라 뒤로 구르는 것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맨땅인 데다 내리막이라서 제법 어질어질했다. 방금 먹은 짜장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소화될 차례였는데 드럼세탁기를 돌렸으니.


남은 시간을 그렇게 둘이서 낄낄 웃으며 서로 동영상도 찍어주고 신나게 굴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마라도에서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낼 줄만 알았는데, 프랑스인 친구와 동행한 것도 모자라 잔디에서 구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길을 잃거나 도난을 당하는 등의 불행한 변수에 비한다면 이러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Pierre는 프랑스어로 자신의 이름이 영어 'rock'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냐며, 나의 성씨인 '석(石)'은 suck이 아니라 'stone'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호응했다. 우리가 바로 마라도의 롤링스톤즈 라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다. 


  

마라도에서의 구르기는 멀리 여객선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며 끝이 났다. 제주로 가는 마지막 배였다. 옷에 붙은 잔디를 툭툭 털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Pierre와 부쩍 친해진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이야 보든 말든 둘이서 마라도 한복판을 데굴데굴 구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경험의 공유야말로 그 어떤 언어나 약속보다도 사람과 사람을 친밀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3. 프랑스식 감자 그라탕


제주도로 돌아가는 배에서 Pierre가 내게 숙소로 전화해 줄 것을 부탁했다. 오늘 저녁은 자신이 만들겠다며, 호스트 아주머님께 이러한 의견과 우리의 도착 시간을 말해달라는 거였다. 나도 나였지만 Pierre 가 굉장히 신나 보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프랑스 집에서 맛있게 해 주는 요리라며, 일종의 그라탕을 간단히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함께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본인이 다 알아서 할 것 같던 Pierre는 결국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생각보다 도착이 늦어져서 호스트 식구들이 배고파했고, 감자를 깎는 일만 해도 본인의 의욕보다는 수월하지 않았던 듯했다. 나도 뭐 뒷짐만 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힘껏 거들었다. 감자를 썰고 치즈를 뿌렸다. 결코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다.



덕분에 호스트 부부와 그들의 어린 딸과 함께 처음으로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프랑스식 감자 그라탕 만으로는 약간 부족하여 군만두를 더해서 상추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훈훈한 분위기였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을 편히 갖고자 일부러 마음을 약간 닫아걸었던 데 반해 Pierre는 전혀 거리낌 없이 타국의 호스트와 여행객 친구에게 다가왔다. 물론 한국인 에어비앤비 게스트였던 나와 외국인 카우치 서퍼였던 그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삼춘(남자 어른을 지칭하는 제주 방언) 들을 전혀 거리낌 없이 대하던 당돌하고 귀여운 6살 아이(호스트 분의 딸)의 끊임없는 가위바위보 요청에 응하며 우리 모두가 즐겁고 화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니 역시나 혼자가 아니었던 시간들은 여러 의미로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생각한 제주 한 달 여행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친한 사람이 혹시 제주로 여행 오면 하루 이틀 정도만 함께하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독채가 아닌 공동생활 숙소에 머물면서부터 그러한 독립성은 욕심이었고 새로 맺어질 관계에서는 give & take 의 질서에 순응할수록 원만한 생활이 가능할 터였다. 나 자신이 give 보다는 오히려 take 에 어려움을 겪는 성향이라고 파악한 지 오래인 나는 솔직히 give의 양을 키울 자신이 없어서 take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돌아올 보답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풀 정도로 여유롭지 못했기에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택하고자 했던 것이다. 변명 같을지 모르겠다만, 제주 한 달 살기는 그동안의 근로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휴직이라는 선택 이후의 나를 철저하게 돌아보는데 집중하려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을 핑계 삼은 또 다른 형태의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괜한 호의를 베풀었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보답에 섭섭했거나, 뜻밖의 호의를 받았음에도 이래저래 보답을 하지 못해 부채의식에 괴로워했던, '관계'에서의 피로감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하여 모처럼 혼자 여행을 다니며 제법 만족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결국 나는 친한 사람들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고,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던 중에 Pierre를 만났고, 더불어 하는 여행을 겪으며 약간의 깨달음 같은 걸 얻어서 마음에 새기려고 했던 기억이다. 혼자이고 싶을 때 누군가 다가오거든, 정작 함께이고 싶을 때 혼자였던 과거를 떠올리며 마음을 열어볼 것. 그러면 상대도 자신의 과거 경험이 어떠했든 현재의 나에게 더욱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혼자일 때는 놓칠 수도 있던 경험들로 마음을 살찌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갈 힘도 낼 수 있다는 것.  


마라도 이후로는 그 어디서도 바다를 보며 앞구르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언제 그런 걸 해볼까 싶다. 하나 확실한 건, 앞으로 여행에서든 인생에서든 생각지도 못한 동행자는 불쑥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면 또 그에 맞게 재미있는 경험을 누군가와 나눌 것이며, 상대에게 내가 먼저 제안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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