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랜 친구를 마음에서 조금 떠나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손절이나 다툼 같은 얄팍한 이유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질병이나 사건 같은 비정한 원인 때문도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그와 나 사이에 더는 메울 수 없는 깊이의 강이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나이를 먹으며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던 시간보다, 단념하고 이해하려 드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특별한 우정에 대한 미련이나 희망이 생각보다 많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운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때로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사는 방식과 환경,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와중에도 우정만큼은 오래 남을 거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믿음이 우리를 꽤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서운함도 결국 기대와 애정이 있어야 생기는 감정이었다. 기대가 줄어들자 서운함도 점차 옅어졌다. 그래서 나는 어떤 친구에게 쏠리는 마음 대신, 여러 관계 중의 하나로 친구를 바라보기로 했다. 특별함을 내려놓는 일이 오히려 관계를 덜 소모시키는 선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그가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고, 나 역시 그렇다. 서로의 방식을 바꾸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 이 관계에 잘잘못을 따질 여지는 많지 않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가장 먼저 전하던 사이에서, 이제는 무소식이 오히려 편안한 관계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정리다. 합의도, 통보도 아니다. 한때는 내 생각과 글을 공유하고 싶던 마음도 있었지만, 관심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차이가, 누군가에게는 꽤 큰 간극이 되기도 한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다 큰 성인이 되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온라인에 넘쳐나는 관계에 대한 단정적인 조언들보다, 이렇게라도 마음의 변화를 기록해 두는 일이 내게는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난 그저 오랜 관계를 조금 다른 위치에 두기로 한 결심을 문장으로 옮겼을 뿐이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도 같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과 함께.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에게 만약 편지를 쓴다면, 이제는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마음을 설명하거나 관계를 되돌리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그저 여러 인연 중의 하나로 남아, 가끔 만나더라도 서로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정도로도 과거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사촌 친척 여럿이서 모임을 가졌다. 사는 게 바빠 오래도록 연락조차 뜸했지만, 막상 만나서 이야기하니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형이고 동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랜 친구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친구와 멀어졌다는 사실보다, 이제는 그 거리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내게는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친구든, 친척이든, 오래 알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지금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느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