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해가 간다

날씨의 변화와, 나.

by 차돌

추위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이제 날이 좀 풀리나 싶다가 이내 다시 추워지고, 눈이 내리고, 잠깐 포근해지는가 싶더니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런 날들이 반복된다. 2025년의 끝자락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새해의 겨울이다.


문득 '작년은 어땠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계절 변화야 해마다 돌아오는 일이지만,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또 그 나름대로, 별 탈 없이 무난하면 무난한 대로 올해의 날씨가 과연 일반적인지 의문이 든다. 그러다 보면 대개는 깜짝 놀라고 만다. 작년의 날씨가 어땠는지, 놀라울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기억력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제법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 사이에서 날씨와 관련한 것만 쏙 빠져 있을 리도 없고, 아직은 두뇌가 쌩쌩하다고 자부하는... 가만있어 보자,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 아무튼 뉴스에서 작년에 비해 날씨가 어떻다더라, 평년보다 몇 도가 높다더라 하는 비교를 아무리 해준들, 막상 체감하는 올해의 날씨는 언제나 처음 겪는 것처럼 새롭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는 지구 온난화가 본격적으로 닥친 게 아닐까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들고,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또 이상 기후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낳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새로움은 불안만 주지 않는다.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남긴다. 작년 겨울이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건, 결국 그 추위를 견디고 지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기억에 또렷이 남지 않을 만큼 일상으로 흡수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해의 폭염도, 장마도, 한파도 결국은 지나갔고, 나는 또 이렇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날씨를 기억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날씨 그 자체는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언제나 그 날씨 속에 내가 겪은 감각과 그에 얹힌 감정이다. 비 오는 날 창밖의 풍경, 유난히 덥던 여름날의 끈적한 기운 , 눈 내리던 날의 정취 같은 것들. 감정이 붙은 장면만이 기억으로 남고, 온도와 습도는 당시의 배경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생각해 보면 날씨만 잊히는 것도 아니다. '작년 이맘때 난 뭘 하고 있었지?' 싶어 일기나 SNS를 뒤적여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펼쳐진다. 비슷한 고민, 비슷한 루틴, 비슷한 감정들. 그런데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날씨처럼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똑같은 날은 끝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년의 날씨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도, 계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나 그 시절의 마음 상태는 또렷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은 지나갔고, 날씨는 흘러갔지만, 그 안에서 흔들렸던 감정만은 오래도록 남아 있는 듯하다.


어쩌면 해마다 새롭다는 감각은, 시간을 여전히 현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설령 지난 겨울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추위를 견디고 새 봄을 맞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올해의 추위 역시 언젠가는 지나갈 걸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계절을 더욱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해마다 해는 가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같은 겨울을 두 번 살아내는 일은 없다. 비슷한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그 안의 나는 매번 조금씩 달라져 있다. .


날씨가 변하는 게 아니라, 날씨를 맞이하는 내가 변해가고 있다. 해마다 해는 그렇게 가고, 나는 또 그 안에서 한 해를 산다. 기억에 남지 않는 수많은 날씨들 위에, 기억에 남을 하루하루를 조용히 쌓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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