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없는 산행

각자의 여정이니까

by 차돌


가까운 뒷산이라도 길을 잘 모르면 헤맬 수 있다. 이 길은 어디로 향하는지, 정상의 위치는 어딘지 수시로 살피지 않으면 예상한 코스에서 이탈하기 쉬운 것이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다. 정상까지 몇 킬로미터라는 이정표만 확인하고 갈림길 몇 개를 성큼성큼 지나쳤는데 한참 후에 보니 언제부터인가 하산로를 걷고 있는 거였다. 분명히 정상을 향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중간 어딘가에서 방향이 바뀌어 버렸나 보다. 결국 그날 등산은 예상보다 한참 걸렸고, 내려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인생은 등산로를 닮아 있다고.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 길이 정말 ‘정상’을 향하는지, 혹은 지금이 중턱인지조차 명확히 알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 있고, 때로는 발아래 길이나 이정표조차 흐릿하다. 누군가는 잘 닦인 능선을 따라 걷고 풍경도 즐기며 가지만, 누군가는 진흙탕을 지나 미끄러지고, 수풀이 무성한 곳을 헤쳐 나가고, 또 어떤 이는 낡아서 미끄러운 신발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차이를 무시한 채 말한다. “나는 올랐고, 너는 못 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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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줄에 접어들고 보니 남일 같지 않다. '나는 진짜 바닥부터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주위엔 이런 태도를 풍기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제법 괜찮은 바닥에서 출발했다. GPS로 따지면 해발 250m쯤 되는 지점이랄까. 또 어떤 친구들은 때때로 자기 삶을 주식 그래프처럼 여긴다. 현재 자신의 삶이 ‘우상향’ 중이라 굳게 믿고, 상승 곡선을 전적으로 본인의 노력 덕으로 여긴다. 부모 찬스라든지 제법 빨랐던 출발선 같은 건 자기 얘기에서 슬쩍 빼놓고. 처음부터 좋은 신발을 신고 정비된 길로 접어든 건 그의 셈법에 없는 것이다.


만족이 어느새 도취로 굳은 이들을 보면 대체로 자신의 행운에 열정적인 반면 타인의 불운에 무심하다. 정상이라 일컫는 높은 곳에 올라 은근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왔는데, 넌 왜 거기야?” 철학 없는 자본주의는 이토록 사람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든다.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배경도 없고, 변수도 없고, 이타심도 없는 시선 앞에서, 저마다의 여정은 사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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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선택은 산행을 닮았다. 출발점도, 장비도, 걸음의 속도나 방향도 사람마다 다르다. 갈림길은 때로 표시가 없고, 길을 잘못 든 건 그곳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위치만으로 타인이 걸어온 여정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게 가장 험한 길을 걸었다는 뜻은 아니며, 중턱에 머무른 게 노력의 부족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삶이라는 산행엔 단 하나의 지도도, 하나의 정상도 없으니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기의 길을 수시로 확인하고 타인의 길은 함부로 확정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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