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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22. 2024

사장은 적응의 동물

사람도 사장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여러 의미가 있을 텐데, 대개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거기에 맞춰 지내는 생존력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해서 제목을 살짝 비틀어 보았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대단찮은 장사 이야기 중의 하나이겠으나, 앞서 연재한 글에 적응한 분들이라면 그럭저럭 '아, 초보 사장은 그렇구나~' 하며 또 한 번 수긍하며 적응할 거라 믿는 이유다.





  개업 초기에 출퇴근 거리가 상당했다. 서대문에 위치한 카페와 분당 끝자락에 위치한 집 사이를 오가려면 매일같이 왕복 세 시간이 넘도록 이동해야만 했던 것이다. 광역 버스를 타려는 직장인들로 붐비는 아침 출근길에는 좌석이 모자라 버스를 놓치는 일도 빈번했는데, 그러다 보면 카페까지 오는 데만 2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라 감수할 수 있었다. 거리가 갑자기 멀어졌다면 아무래도 힘들게 느껴졌겠지만, 애초에 알고도 결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볼 만했다. 몸이 좀 고되더라도 타의가 아닌 자의로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성실하고 끈질긴 성격인 덕...이라고 말하기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3달 정도 오가는 동안 체력이 깎이는 느낌을 받긴 했다. 초보 사장의 패기랄까 의욕 덕에 힘들다거나 귀찮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무래도 멀긴 멀었나 보다. 초반에는 버스에서 카페 인스타그램에 올릴 게시물 편집을 하는 등 쌩쌩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잠들기 일쑤였다. 퇴근해서 집에 바로 가도 9시는 기본이라 영업시간을 늘릴 엄두도 못 냈음은 물론이다.


  다행히 나는 지난달에 카페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꼭 힘들어서만은 아니었고, 함께 지낼 사람이 생긴 덕(?)에 겸사겸사 집을 이쪽으로 구해서 온 거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상황에 잘 맞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가게 운영에 적응할 무렵 또다시 내게 이로운 환경을 구한 셈이다.





  왕복 30분 거리로 출퇴근하며 전보다 아침잠도 푹 자고 저녁 시간의 여유까지 누릴 수 있어 가히 쾌적해졌다 할 만하다. 영업시간을 조정해도 되겠다 싶은데, 이게 또 바꾸면 고객들에게 혼란을 안길 수 있으니 신중하게 바꿀 예정이라 아직 그대로 영업중이다. 덕분에 체력을 회복하고 개인 시간도 보다 여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게 있다. 3시간 거리가 30분으로 줄었다고 해서 산술적으로 6배가량의 에너지가 더 채워졌다고 느낄 정도는 아닌 것이다. 3시간이 180분이니 30분은 1/6이고, 그만큼 아낀 체력을 가게 일에 6배 더 투입해도 되겠단 식의 단순 논리로는 접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원래 약속 시간에 늦는 건 멀리 사는 사람보다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집이 가까우면 그만큼의 편의는 누리되 멀었을 때만큼 부지런 떨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사람도 사장도 적응의 동물인지라 자기 생존 본능에 따라 환경에 기어이 적응하고야 만다. 집이 멀 때도 카페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적응했으니, 가까워진 지금 약간의 요령(?)을 부리는 적응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난 요새 걸어서 출퇴근하는 중에 이사 오기 전 버스에서 많은 시간 보내던 때를 자주 떠올린다. 그때라고 엄청 힘들었고, 지금이라고 또 엄청 편하지만도 않은 걸 보며 중요한 건 거리나 시간이 아니란 깨달음을 스스로 구해보는 것이다. 


  카페 사장의 출퇴근 거리가 멀든 가깝든 손님에게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닐 거다(알빠?) 멀 때도 열심히 가게를 열었으니, 이제 가까워진 장점을 십분 살려 더 열심히 운영해 보고자 한다. 여건이 아무리 변한들 나는 거기에 또 적응하겠지만, 영업 시간 동안 좋은 카페를 운영해 나가는 일만큼은 변함 없는 원칙으로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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