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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Jun 15. 2024

기본은 커피다.

카페니까



  여기 시그니처 메뉴는 뭐예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묻는 손님들이 있다. 거리마다 카페가 즐비한 우리나라, 바야흐로 핫플 전성시대에 시그니처 메뉴란 첫 방문객에게 가게를 판단하는 척도와도 같단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난 고객을 살피고 있다. 마치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묘사하는 셜록 홈즈처럼, 사소한 단서 하나라도 챙겨서 그분의 취향이 어떨지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우직하게 기본 커피를 중요시할 듯한 분이다 싶으면 기본인 아메리카노라든지 고소한 라떼를, 달콤한 향미를 좋아할 분 같으면 부드럽고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권하는 식으로 나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개업 초기, 메뉴판을 처음 만들 때 '시그니처'란 단어를 사용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왜냐고? 아니, 카페를 처음 여는 초보 사장이 대체 무슨 근거로 대표 메뉴를 벌써 자랑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아주 최소한 500명의 손님께라도 내가 만든 여러 음료를 선보이고 그중에서 반응이 가장 괜찮은 메뉴가 대중적일 거란 판단을 하면 모르겠다. 아니면 애초에 내가 굉장한 바리스타여서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포인트라도 있든가.


  아쉽게도 둘 다 해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내린 선택은 '정직'이다. 아직 진짜 시그니처라 할 만한 메뉴는 없다, 하지만 모든 메뉴 하나하나를 소중히, 이 값을 지불하고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드리겠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고 고객에게 받아들여졌으면 하고 바라는 개업 초기 카페의 정직함이다.





  시그니처 메뉴의 유무가 카페의 퀄리티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고객으로서 많은 카페를 다니며 다양한 시그니처 메뉴를 접했으나 매번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러다 보면 '아 이 카페에서는 그냥 이 메뉴를 많이 팔고 싶은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한때는 마케터였기에, 시그니처의 속성(?)이 좋게 보면 마케팅, 나쁘게 보면 상술이라는 판단쯤은 해 볼 수 있다.


  아인슈페너에 디저트를 넣어볼까? 흑임자 라떼를 도입해 볼까?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내 선택은 보류다. 이대로 머물거나 유지하겠단 게 결코 아니다. 부지런히 새로운 메뉴를 도입해 왔고, 커피에 관심을 계속 기울이며 공부하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그 과정 속에 결국 자신 있게 탄생하리라 믿는다.





  뭐니 뭐니 해도 카페의 기본은 커피다. 좋은 원두를 쓰고, 좋은 머신을 사용해 숙련된 추출 기술로 내리는 커피에 자신을 갖지 않고 어찌 카페의 기본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워낙에 빠르게 돌아가는 어수선한 세상이기에 기본이 망각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오늘날, 그래서 더 중요해진 기본부터 챙기는 일은 어떤 업에서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아직 굉장한 음료를 만든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 이상으로 꾸준히 발전해 간다는 확신과 다짐으로 고객들에게 하루하루 열심히 커피를 내려 드리고 있다. 커피가 맛있다며 칭찬해 주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닌 이상, 우리 카페의 시그니처는 내가 정하지 않아도 조만간 탄생하고야 말 거란 자신이 있다.


  현재 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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