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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의 질서

다낭에서 배운 교통의 역설

by 차돌


경기도 다낭시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괜히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곳곳에서 한국어 안내를 받았고, 물가는 저렴해 부담 없이 즐기기 좋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은 기억이 하나 있다. 바로 교통질서다.




길을 건너는 법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길 건너기 무섭다'는 말을 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자동차 사이를 뚫고 달렸고, 교통신호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보행자들은 눈치껏 타이밍을 재며 도로를 건넜다.


혼자만 쭈뼛거릴 순 없었다. 여행 이틀째부터는 나도 능숙하게 차선을 가로질렀다. 위험해 보였지만, 그것이 그들만의 질서이자 교통의 순환 방식이었다. 일종의 '암묵적 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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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위험, 실제 위험


궁금해서 찾아보니 베트남의 오토바이 사고율은 확실히 높다. 하지만 사고 사망률은 태국의 절반 수준이다. 태국도 오토바이 사용율이 굉장히 높은데, 음주운전 사고 비율까지 높아 치명적인 사고가 많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 베트남 : 눈에 보이는 위험이 커서 불안하다.

- 태국 : 겉보기엔 베트남보다 질서 정연하지만, 실제 위험은 더 클 수 있다.


보이는 위험과 실제 위험이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질서의 질서


다낭의 거리를 걸으며 깨달았다. 그들의 질서는 타인의 눈에 무질서로 보일 수 있다. 아니, 누구나 그렇게 여길 만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살아간다. 관광객이 잠시 스쳐본 풍경이 아니라, 일상의 시스템인 것이다.


그랩 택시를 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경적 소리는 위협이 아니라 충돌을 피하기 위한 신호임을. 빵빵거려도 누구 하나 화내거나 불평하는 걸 여행 내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이 그들 사회의 합의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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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속의 무질서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에서 바로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던 길, 도로 분기점에 줄을 서 있던 순간이었다. 내 뒤에 있던 차가 갑자기 옆으로 바짝 붙어 스치듯 추월하며 앞으로 끼어들었다. 자칫 접촉 사고로 이어질 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깜빡이도, 비상등도 없는 그 무례한 행동을 보자 나도 모르게 경적을 여러 번 울릴 수밖에 없었다.


질서 정연해 보이는 도로에서도 이런 돌출 행동은 언제든 벌어진다. 결국 어느 사회든 무질서와 질서는 공존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틀이 나라마다 다를 수 있기에, 우리는 다만 그 안에서 눈치껏 어우러져 살아갈 뿐이다.


멀어져 가는 그 차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질서해 보이던 다낭의 도로가, 어쩌면 이곳보다 더 합리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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