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나였다고?' 그냥 낯선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20대의 나는 세상과 부딪히며 배우는 게 너무 중요했다. 30대 초반의 나는 사람을 만나야 숨이 쉬어지는 줄 알았다. 인간관계가 삶의 중심이었고, 약속이 많을수록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철저한 '관계형 인간'이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변했다. 언제부턴가 약속 없는 주말이 반가워졌고, 누군가의 연락보다는 조용한 시간에 더 안도하게 되었다. 인간관계가 싫어졌다거나 냉소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사람 사이의 온도를 유지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20대엔 누가 날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겪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향하던 에너지가, 어느새 자기 자신에게로 조용히 방향을 틀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지금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조용한 주말이 이어지면 문득 불안할 때도 있다. 예전엔 모임이 없으면 외로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너무 고요하면 내가 세상과 멀어진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스친다. 하지만 그 감정마저 이제는 금세 사라진다. 아무래도 예전처럼 '채워야만 안심되는 나'에서 조금은 벗어난 걸까 싶다.
재미로 보는 MBTI 결과는 그 변화를 수치로 보여준다. E(외향) 80, I(내향) 20으로 출발했던 게 해마다 5%씩 줄더니, 어느새 I가 E를 초과했다. E의 시대가 저물고, I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예전엔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했는데,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에 머리에 충전기를 꽂는 기분이다. 사회생활보다 홀로 지내는 휴식과 여가의 순간이 더 소중해졌다.
사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I임을 전보다 당당히 밝히는 듯하다. 반드시 만나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고, 굳이 떠들지 않아도 소통이 되는 세상이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옛날만큼 낯설거나 꺼려지지 않는 거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어떤 결심이나 특별한 계기의 결과는 아니다. 그냥 서서히, 꾸준히 이렇게 되어버렸다. 예전엔 하루를 빽빽하게 채워야 의미 있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금세 흐른다. 입맛이나 취미 같은 취향도 바뀌었다. 아주 확실하게 바뀐 것들이 꽤 많다. 어릴 땐 여자 친구가 먹자고 할 때만 먹던 떡볶이를 요즘은 내가 먼저 찾고, 전에는 재밌게 보던 멜로드라마가 이제는 시시해졌다.
예전엔 '외로움'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피로감'이 더 무섭다. 예전엔 '함께'가 정답이었는데, 이제는 '각자'가 더 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더 나은 건 아니다. 단지 달라졌을 뿐이다. 20대의 나와 30대의 나는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겠지만, 결국 둘 다 나였다.
그래서 가끔 내게 놀라 스스로 되묻곤 한다. '이게 성장일까, 혹은 체력 저하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너 왜 이렇게 재미 없어졌어?"하고 투덜거렸을 테지만, 지금의 난 웃으며 답할 거다. "이게 요즘의 나야."
가끔은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심할 땐 이불킥도 한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느라 헤맸고,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 속에 나를 붙잡으려 애쓴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차이는 분명하지만, 한 가지는 같다. 여전히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그게 나였다고, 그리고 나는 이제 이렇다고.
아마 당신도 언젠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비슷한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