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피자집에서 겪은 일이다.
그날은 프랜차이즈 할인행사 날이라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휴대폰에서 우연히 할인 쿠폰을 발견하고는 예정에 없던 저녁 메뉴로 피자를 선택한 참이었다. 보통 대기 시간이 2~30분은 걸리기에 미리 온라인 주문을 해 두고, 조금 일찍 매장으로 향했다.
작은 포장/배달 전문 매장에는 이미 너댓 명의 손님이 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인 행사와 저녁 피크타임이 겹쳤으니 그럴 만했다. 배달 기사는 갓 포장된 피자를 들고 사람들을 헤치며 급히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아, 오늘은 가게가 정말 바쁜 날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손님인 나도 숨이 막히는데, 저 안에서 일하는 이들은 얼마나 정신없을까 싶었다.
잠시 뒤, 한 아주머니가 들어서며 주문번호를 확인했다. 점원은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10분 정도 더 기다리셔야 해요."
아주머니는 금세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도 10분이라고 해서 다시 왔는데, 또 10분이라고요?"
"죄송합니다, 주문이 많이 밀려서요."
"그럼 차라리 아까 전에 20분이라고 했어야죠. 이번엔 정말 10분만 더 기다리면 되는 거 맞아요?"
아주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 시간은 소중하고, 모두가 바쁜 하루를 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작은 피자 가게 안에서는 누구의 분노도 제대로 머물 자리가 없어 보였다.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조금씩 지쳐 있는 풍경이었다.
안쪽 주방에서는 직원 한 명이 열심히 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 카운터에서는 전화 주문, 온라인 주문, 배달 알림이 계속 울렸다. 새로 들어서는 손님들은 번호를 확인하며 점원으로부터 또 다른 '죄송합니다'를 받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내 주문도 꽤나 밀려 있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오늘은 나만 피자가 땡기는 날이 아니었다.
15분쯤이 지나 손님 한 명이 피자를 받아 나가며 자리가 비자 나는 구석 의자에 앉았다. 조금이라도 앉아 있는 편이 덜 지칠 듯했다. 가게에 들어선 이후로 점원에게 내 주문번호를 한 번도 묻지 않은 건, 바쁜 사람에게 그 한마디마저 짐이 될 것 같아서였다. 조급함을 덜어내고 싶기도 했고.
잠시 뒤 20번 손님이 피자를 받아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한 아저씨가 크게 외쳤다.
"아니, 난 18번인데 아직 안 나오고 20번이 먼저 가져가는 게 말이 돼요?"
점원이 다시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문이 많이 밀려서요."
"상식적으로 번호 순서대로 줘야지!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피자는 동일한 순서로 나오지 않을 수 있고, 두세 번호 앞 주문이 먼저 나온 것 가지고 저렇게까지 화낼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마다 하루의 피로도와 인내심의 한계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5분, 10분도 큰 감정의 영역일 수 있다.
아저씨는 씩씩거리며 5분을 더 기다린 끝에 자신의 피자 봉투를 낚아채듯 들고 나갔다.
그때부터 나는 점원의 표정을 유심히 보았다. 짜증도 억울함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같은 톤의 '죄송합니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 태도는 무덤덤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오래된 체념 같은 느낌이 섞여 있었다. 서비스업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말로 '죄송해서'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일 때 나오는 표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후에도 배달 기사 몇 분이 더 다녀갔고, 주문 알람은 끊임없이 울렸다. 결국 피자 가게는 더 이상의 신규 주문을 받지 못한다는 안내까지 내걸었다. 몇몇 손님의 짜증 섞인 채근이 더 이어졌지만, 점원의 힘겨운 사과 덕분(?)에 큰 다툼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잠자코 기다리던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점원은 먼저 내게 주문번호를 물어보았다. 역시 1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 주문이 제대로 들어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나는 온라인 주문 후 약 55분, 매장 방문 후 약 45분이 지나서야 콤비네이션/불고기 반반 피자를 받아 들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배고픔에 앞서 신경이 쓰인 건 매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이었다. 피자 가게 점원은 오늘 하루 동안 몇 번이나 '죄송합니다'를 말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빠른 처리와 완벽한 응대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터에서는 그만큼 정확하고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을까.
그날의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만 상황이 달랐어도 나 역시 조바심을 내며 누군가에게 날 선 불만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웬만한 일에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기다려서 받은 만큼, 피자는 굉장히 맛있었다. 주문이 아무리 밀려 있어도 정석대로 만드는 것, 그게 그 피자 가게의 비결이자, 때로는 단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