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를테면, '선이 흐릿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분명히 밝히거나, 상대의 의도를 직접 확인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음을 활짝 열어두었다가, 방에 홀로 돌아와서야 그날의 말과 표정을 하나하나 곱씹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 게 '오픈 마인드'인 줄로만 알았다. 내 주위의 경계를 확실히 하지 않아야 더 많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돌이켜 보면, 내게 좋은 사람도 많이 오갔지만 나빴던 사람도 제법 됐던 것 같다. 다행히 경계심도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크게 해를 입은 적은 없다.
나쁜 사람이 절대적으로 나빴단 말은 아니다. 다만 내 경계가 너무 흐릿해서 그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뿐인 경우가 많았다. 행여 상대의 선을 침범할까 조심하고, 이 정도가 선이 맞나 확인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귀하다는 건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선이 흐릿하다'라는 건 인간관계에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호와 불호, 허용과 거절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내 곁을 어느 정도 허용할지 종종 본인조차 헷갈려한다. 그러다 보면, 내게 무해하던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선을 그어주지 않으니 넘나들었을 뿐인데, 전에는 괜찮더니 갑자기 불편함을 티 내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그래서 종종 선이 흐릿한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변했다'라는 말을 듣는지도 모른다.
변했단 말은 종종 상대를 향한 평가이기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 선이 분명한 사람이 되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그래서 요즘도 '한결같다'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 걸지도). 여전히 나는 어떤 순간에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내 선을 침범한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그 불편함을 '내가 예민해서 그렇겠지'라며 덮어두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신 왜 불편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선이 분명한 사람이 부러웠다. 호와 불호를 명확히 정하고, 허용과 거절을 미리 알리는 사람들. 그들은 차갑거나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소모시키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쯤까지는 괜찮고, 그 너머는 아니란 말을 먼저 꺼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와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아마 나는 아직도 선이 흐릿한 사람일 것이다. 다만 전보다는 내게 '괜찮은' 선을 조금 더 자주 의식하는 사람 정도는 된 것 같다. 나 자신의 마음을 함부로 소진시키지 않는 일이 곧 남의 선이 흐릿해도 한 번 더 확인하고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길이라고 여긴다.
나의 선은, 전보다 조금은 더 진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