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절 말고 익절

by 차돌


손절해야 할 유형의 사람, 오랜 친구가 더 불편해지는 순간,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끊는 법...


SNS에는 인간관계에 관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생판 남보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과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짐작된다. 첫째,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주 마주치고 부대낄 수밖에 없으니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 둘째, 가까운 사람이기에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만, 정작 그 사람과 생긴 문제는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결국 남의 말, 남의 이야기에 기대어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재미있는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피해자'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느껴야 고민이 되고, 글이 된다. 스스로를 가해자로 여기며 인간관계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드러난 피해자의 수만큼, 어쩌면 그만큼의 숨은 가해자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에 관한 조언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어떻게 거리를 둘 것인가. 너무 심하면 손절,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된 관계가 점점 버거워진다면 서서히 거리를 두라는 식이다. 핵심은 하나다. 불필요한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지키라는 것. 이미 틀어진 관계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도 친구와의 관계로 여러 번 고민을 했다. 남 탓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문제를 곱씹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마음은 더 분명해진다. 어릴 땐 친구가 미워도 '내가 고치면 되겠지' 하고 넘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오히려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안다.


사람은 변한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한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사는 환경도, 가치관도, 운이 닿는 방향도 제각각이니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지는 간격을 좁히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관계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틀어지는 건 한 순간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절'이라는 표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관계를 끊어낸다는 말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어딘가 과장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를 위해 관계를 정리하는 거라면, 차라리 '익절'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솔직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완전한 절연이 필요할 만큼 누군가와 크게 불화하는 일은 드물다. 다만 아주 친했던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계의 단절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손절이라는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동안 너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던 내 에너지를 정리하기 위해 종종 익절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밀어내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일 - 카페 운영, 글쓰기 - 에 보다 집중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익절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심이다. 그러니 너무 이익만을 따진다거나,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보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1화피자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