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힘들어

by 차돌

과시의 시대, 방어 기제가 된 잘난 '척'

겸손이 미덕이란 말은 이제 구식으로 들린다. 대놓고 과시하기, 은근히 뽐내기, 거짓으로 있는 척하기.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포장한다. 혹시 모를 타인의 무시를 방어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전략이다. 각종 미디어와 SNS 속 화려한 삶이 대중의 바로미터가 되어버린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조상들의 DNA가 어디 가겠는가. 우리 사회의 화려한 이면에는 여전히 겸손을 중시하는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지나친 과시와 자만으로 한순간에 무너진 유명인이 어디 한둘인가. 최근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 역시, 겸손하지 못한 태도와 행실이 대중의 손가락질을 더욱 매섭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세는 겸손에서 드러난다

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겸손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체는 감추려 하면서도 타인의 실력이나 명성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집요하게 살핀다. 그래서 허세는 결국 들통나고, 실세는 겸손을 통해 비로소 인정받는다. 그만한 위치에 있음에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은 그래서 더 귀하게 여겨지고 오래 기억된다.


겸손은 확실히 어렵다. 시선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리면 이 말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의로서 겸손한 척하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지만,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를 낮추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학창 시절, 성적에 어느 정도 자신 있었고 그만큼 우월한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 믿었던 마음은 지금 돌이켜보면 청년기의 자만이었다. 대입이든 취업이든 나름의 성취를 이뤘다 여기며, 부족함을 돌아보기보다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을 앞세우기 급급했던 건 사회 초년생의 설익은 자세였다.


하늘이 내린 정직한 경고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조금 귀여울 지경이다. 내세울 만한 것은 많지 않으면서도 잘난 척하지 않으려 애쓰고, 동시에 없어 보이지 않으려 다방면으로 안간힘을 쓰던 모습들. 사소한 성취에도 혼자 우쭐해 콧바람을 불며 즐기던 시간들. 그때마다 세상은 내게 크고 작은 실패와 사건을 통해 정직한 경고를 내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마치 영웅에게 주어지는 시련쯤으로 착각하며 의지만으로 버텨보려 했던 것 같다.


평범한 개인의 서사가 이럴진대, 정말로 특출난 사람들은 어떨까. 재정적으로든, 재능적으로든, 혹은 신체적으로든 평균보다 앞서 있는 이들이 세상의 분투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최고 수준에 오래 머무는 자세

그래서 힘든 시절을 겪고 일어선 이들의 성공담에는 반드시 겸손함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 비결로 어김없이 운이나 주위의 도움을 꼽는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기에 불필요한 질시를 피하고, 대신 내실 있는 삶을 이어간다. 잠깐 최고에 올랐다 내려오는 삶이 아니라, 오래도록 최고 수준에 머무는 삶을 유지하는 비결은 결국 겸손에 있다.


겸손은 확실히 힘들다. 제대로 성공해 본 경험도 많지 않은 나조차 이렇게 깨닫는 일인데, 진짜 성공한 이들이 이를 가볍게 여길 리 없다. 만약에 겸손하지 않고도 성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성공은 허구이거나 위태로운 허세일 확률이 높다.


나는 늘 겸손하고 싶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며, 마침내 내 삶의 내실을 기하는 유일한 자세임을 믿기 때문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3화선이 흐릿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