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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Nov 10. 2017

제주 한달살기 Day20 : 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김녕라떼와 함바그 먹고 월정리 카페에서 쉬어가기

# 김녕 쪼끌락 - 김녕 함바그집 - 월정리 tempus




아침에 일어났는데 영 몸이 찌뿌둥했다. 커튼을 걷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창밖은 흐린 날씨였다. 목이 말라서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피곤하긴 한데 정신이 깨어나 잠이 더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누워서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느지막이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전날 무리를 한 것도 아닌데 컨디션이 나쁜 게 날씨 탓만은 아닐 터였다. 신체 리듬이라든지 기타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굳이 그걸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 '아마 이러이러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추정할 만한 몇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여행의 2/3 지점을 지나 다시 돌아갈 현실을 조금씩 떠올리느라 복잡해진 머리. 둘째, 최근 며칠 동안 동행과 함께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신경을 썼던 부분. 셋째, 단순한 신체리듬의 저하. 


여행을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는 쉬는 게 좋다. 여행 자체가 쉼의 연속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사유하는 시간들을 일반적인 '쉼'의 범주에 넣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 2박, 3박 여행에서야 도저히 무리다 싶을 정도가 아니라면 기회비용을 생각해서라도 예정대로 다니겠지만 열흘, 스무날 계속되는 일정은 달랐다. 수시로 내 상태를 점검하며 피곤하다 싶으면 멈추어 쉬었다. 여행기를 작성한다는 명분까지 있었으니, 제주의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는 자체가 하나의 여행 방식인 셈이었다.



  


김녕 해변으로 갔다. 에메랄드빛 바다색이 인상적이었던 몇 년 전의 방문이 기억나는 장소였다. 아껴놓느라 오히려 이번 여행에서는 아직 한 번도 안 들렀던 해변이기도 했다.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부두로 나갔다. 점점이 모여있던 까만 갯강구들이 내 발걸음에 놀라 재빠르게 흩어졌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 얼른 고개를 들어 바다와 하늘만 바라봤다. 흐린 하늘과 달리 바다 빛깔만큼은 옥처럼 맑고 푸른 그대로였다. 김녕, 김녕, 김녕... 입에서 맴도는 이름이 참 낭랑하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카페 '쪼끌락'에 갔다. 커피와 함께 파아란 음료가 섞이며 에메랄드 빛을 띠는 '김녕라떼'가 시그니처 메뉴로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워낙 인터넷에 리뷰가 많아서 나 역시 몇 년 전에 여자 친구와 방문했었다. 이번에는 다른 카페를 가볼까 하여 주위를 둘러봤는데, 여러모로 쪼끌락 만한 곳이 없어 보여 결국에 재방문을 했다.


 

다시 마셔본 김녕라떼는 역시 예쁜 색이었고 맛은 달달했다. 평일 오전이라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 작은 매장 내에 몇 안 되는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남자 혼자인 손님이 나뿐이었던 걸 기억하는 걸 보면 약간 신경을 썼나 보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감성적인 메뉴들로 가득한 카페인지라 세화 해변의 '카페 공작소'처럼 주로 커플 고객이나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십자수를 뜨거나 순정만화라도 봤으면 모를까 노트북을 켜놓고 사진을 정리하거나 글을 썼으니 특이할 건 사실 없었다. 정작 아무도 신경을 안 썼는데 나 혼자 눈치를 살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이 잘 돼 거의 두 시간 이상을 그곳에 머물렀다.





인근 맛집을 검색해 보니 인터넷에 많이 나오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마침 양식 종류가 먹고 싶었는데 메뉴도 알맞아 그리로 갔다. 워낙 가까워서 걸어서 갔다. '김녕 함바그집'이었다.



오리지널 함바그+치즈쌈 메뉴를 주문했다. 먹는 동안 메인 플레이트가 식지 않도록 촛불로 데우는 음식이야 흔히 봤지만, 직접 고체연료를 사용해 치즈를 녹여서 곁들여 먹는 방식은 신선했다. 찍먹 / 부먹 중 전형적인 찍먹파인 나로서는 간단하게나마 내가 양을 정해서 치즈를 직접 녹여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함바그는 물론 매우 맛있었다.



식당 내부는 매우 캐주얼하고 색감이 화려했다. 과연 젊은 층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소문을 낼 만한 포인트가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애초에 '함박집' 이 아니라 '함바그집'이라고 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 싶었다. '걱정하지 말고 설레어라'는 말을 함바그 스테이크 집에서 보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식사 후에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쪼끌락에서 쓰다가 만 글을 마저 완성하고 싶었고, 책도 좀 읽고 싶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월정리에 한 군데 생각나는 카페가 있었다.



며칠 전 여자 친구가 떠나고 형을 만나 처음으로 함께 들렀던 카페 'tempus'였다. 루프탑 벤치가 유명한 월정리LOWA나 그 주변의 비슷한 카페들은 잠시 앉아서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좋지만 오래도록 앉아서 노트북을 할 만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반면 tempus는 넓은 창을 통해 월정리 해변을 바라보며 편히 머물 수 있었다. 이상하게 손님이 많지는 않아서 내게는 더 좋았다. 내부 인테리어나 메뉴를 조금만 손보면 다른 곳들 이상으로 인기를 끌 것 같기는 했지만, 카페 운영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 갔던 날에는 손님이 바글바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월정리에는 애월 이상으로 자주 방문한 거였다. 오며 가며 지나친 걸 제외하고도 그곳 해변을 구경한 게 벌써 네 번째였다. 숙소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었겠지만 분명히 그 정도면 어떤 선호의 이유가 있다고 봐야 했다. 다만 정확하게 집어내기는 어려웠다. 해안이 한적해서 여유롭냐 하면 그건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좁은 해안도로를 따라 밀집한 상점들로 인해 주차가 어려울 지경인 건 월정리 해변의 두드러진 단점이었다. 그렇다고 바다색이 특별히 예쁘냐 하면 인근의 김녕이나 세화, 함덕 등에 비해 특별하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월정리에 특별히 선호하는 해안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갈 때마다 이곳저곳 들어가 봤을 뿐이다. 월정리는, 그냥 월정리라서 자꾸 가게 됐다고 결론지었다.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바로 이곳에서 여자 친구와 왕발통을 타고 달렸던 며칠 전을 마치 오래된 추억처럼 느꼈던 기억이다. 그만큼 여행기를 정리하는 일이 꽤 밀려있긴 했지만 사진들을 통해 여행을 거의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오늘은 새로운 곳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또 추억할 만한 사진들을 찍어 놓았음을 다시 한번 휴대폰으로 확인했다. 그러다 슬슬 집중력이 떨어져 갈 무렵 카페를 나섰다. 


풍차 너머로 저물어 가는 노오란 해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새삼스럽게도 적당한 편안함으로 적당한 속도를 내주어 나를 이동시켜 주는 하얀 모닝이 고마웠다. 얼마 전에 내가 직접 차량 종합검사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괜히 뿌듯해 지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그로 인해 적잖이 스트레스도 받았으면서, 결국 지나고 나니 그랬다.


왼편으로는 드문드문 작은 펜션들을 지나고 오른편으로는 낯선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렇게 지는 해를 향하다가 저녁이 다 된 시간임을 퍼뜩 알아차렸다. 허기가 밀려왔다. 점심을 워낙 잘 먹었으니 저녁까지 굳이 맛집을 찾아갈 필요를 못 느꼈다. 갑자기 컵라면이 먹고 싶었다. 편의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 야외 테라스까지 있는 세븐일레븐이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 드링크 소화제를 하나 샀다. 확실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날이라 잘 먹고도 속이 좀 불편했던 것 같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별로 이쁘지는 않은 눈 앞의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또 남겼다. 덕분에 그때를 더욱 잘 기억한다. 먹고 싶을 때 먹는 컵라면은 역시 맛있었고,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삼각김밥은 알알이 서울의 작은 편의점에서 먹는 것과는 달랐다.


아침과는 달리 여행이 열흘이나 남았다며 다시 들떠서 숙소로 돌아간 나였다. 여행 중에도 역시 쉼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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